"대한의사협회가 없으니 너무 편하네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의협 대표는 왜 2명이나 들어가나요."
건정심에 참여하는 위원들에게서 실제로 나오는 소리다. 의협이 건정심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회의에 들어가지 않은지 1년이 다 돼간다. 건강보험 정책 심의, 최고 의결기구인 건정심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돌아가고 있다.
오히려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정책들이 속속 통과되고, 안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복부 초음파 및 두경부 MRI가 급여화 됐다. 한방 추나요법이 급여화됐고 첩약 역시 급여화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진료과 의사회가 잇따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에 한의사를 포함하는 안건도 건정심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의료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굵직한 정책들이 건정심에서 논의 되고 있다. 의협이 건정심에 참여해야 할 이유다. 인적 구성 등 논의구조가 공급자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이라며 마냥 손을 놓고만 있을 문제가 아니다.
의협의 불참이 길어지자 2명이 참여할 수 있는 위원 배정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들리는 상황이다. 공급자 단체 중 의협만 유일하게 2명의 위원이 참여한다. 그만큼 정책적으로도 의료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목소리가 건정심엔 없다. 투쟁 기조인 의협의 상황으로 봤을 땐 앞으로도 당분간은 의료계의 목소리는 건정심에서 들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의협이 건정심에 참여했더라도 앞서 말했던 굵직굵직한 정책들은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회의에 참여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기록에 남기고, 여론을 조성하는 것과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외부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르다.
추나요법 급여만 봐도 급여를 막지 못한다면 추후 명확한 급여 범위에서 제대로 시행됐는지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니 사업 1년 후 건정심에 보고토록 하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추나요법이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 급여를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건정심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 지금은 추나요법 급여화가 비과학적이라는 성명서 발표에만 그치고 있다. 다른 의사 단체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열린 건정심에서는 건강보험종합계획을 심의, 의결했는데도 의협은 건정심에 참석해 강하게 내야 할 비판의 목소리를 성명서, 건정심 항의방문으로 대체했다. 건정심 회의장 문앞까지 가서 의협 의견서만 정부에 전달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 날 건정심에서 건강보험종합계획은 통과되지 못했다. 가입자, 공급자 모두 재정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의협도 이 자리에서 함께 같은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
의협이 지난달 발표한 대회원 설문조사를 봐도 72%의 회원이 투쟁은 필요하지만 정부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건정심에 다시 참여하기 위한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정무적 감각을 발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