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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운동에서 의사가 배울 것

남기룡
발행날짜: 2019-07-31 06:00:02

대한전공의협의회 남기룡 정책이사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물결치며 9시 뉴스를 도배하는 시기와 동시에 의료계에선 원격의료 반대를 비롯한 대한의사협회의 적극적인 의료 개혁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불매운동과 달리 이러한 의사들의 투쟁은 의료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어째서 두 가지 이슈에 대해 하나는 수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분개하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인지도조차도 떨어지는 것인가?

뉴스 등에 크게 관심 없던 필자가 처음 불매 운동을 들었을 땐 우선 배경이 궁금해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과정에 이용되는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화 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에 대한 수출규제. 이과생도였던 필자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물질들에 대한 수출규제에 의해 국민 경제에 타격을 입힐 악랄한 일본 사람들에 대한 보복으로서 불매운동을 시작하였다는 듯 하다.

실상은 이전부터 무역에 관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아웅다웅 하던 상황이었던 듯 한데, 필자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고 모든 국가간의 무역 협약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있어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관심거리로 만들고 사회운동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떤 점에 국민은 분노하고 어떤 점에 집단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여론을 특정방향으로 몰아가고 행동을 촉구하게 하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부족한 필자의 견식은 다음과 같다.

현 시대를 구성하는 한국 국민은 필수 교육과정에 의해 자긍심 높은 한국의 역사와 일제시대에 대해 교육받고 주기적으로 국민의례와 애국가를 제창하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일본에 대한 내재된 감정을 이용한 정치라 함이 맞겠다.

이를 통해 현 정권은 다른 문제들을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정치적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특수한 감정을 자극하여 개인의 삶에 거의 상관 없는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데 성공적이었고 이를 통해 애국심,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통치성을 확보해 나간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정책 형성에 있어 의제화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산재되어 있는데 특정 사건 및 계기, 정치 등을 통해 이 문제는 의제, 즉 아젠다가 된다.

문제를 의제화 하는 것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일이다. 9시 뉴스에 한번이라도 나온 이슈는 쉽게 정책이 바뀌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이런 점에서도 9시 뉴스는 포털사이트 뉴스에 비해 상징적이다.)

잠시 잊고 있었겠지만 의료계를 확인해보자. 애당초 투쟁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단식투쟁 직전 대한의사협회에서 올린 영상을 보면 정부에서 수가인상률을 2.9%로 낮게 책정하여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언급을 한다. 수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만 이것을 의제화 시키는데 성공적이었는지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의료 개혁이 투쟁의 목표라고 하고 있는데 국민이 공감을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국민은 의사는 신뢰하지 못하더라도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신뢰하는 듯 하다. 값싸고 쉽게 진료받을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냐는 분들을 많이 봤는데 이는 비교대상이 주로 미국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반대로 미국인들은 본인의 주치의, 즉 의사는 신뢰하지만 의료시스템은 신뢰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 듯 하다)

그나마 의료인들이라도 투쟁에 공감해서 적극 참여해주면 좋겠지만 의료인들 조차도 의견은 분분하고 의사들 간에도 다양한 의견이 엇갈린다. 수가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도 유일하게 의사들의 동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를 의제화 시키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사가 정치를 잘 못하는 것은 의사가 행정부나 입법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을 모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출신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의사라서 가 아니라 지역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무원은 재선이 관심사인 만큼 지역의 유권자들을 대표하는 것이지 의사를 대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가를 올리는 법안에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얼마나 있겠는가? 유권자의 관심이 수가를 올리는 것인가?

프로 불만러인 필자의 경우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세계시민주의적 관점에서 두 국가가 서로 괴롭히는, 지구촌 어느 누군가에게는 실직과 삶의 위기를 줄 수도 있는 운동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 의료계는 배워야 한다. 어떤 방법과 어떤 것들이 국민의 관심을 이끌고 국민의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유권자인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한국 보건의료를 바꾸는 데 의사들은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