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2020년 식의약 안전기술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기관 공모를 발표하면서 연구비의 규모는 28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사업에 대한 2019년도 예산은 323억원 규모였다. 국가 예산으로 국민과 환자의 안전을 위한 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식약처는 연구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약처는 실제적인 심사와 행정을 맡은 조직이며, 그 맡은 일의 성격상 고도의 전문성, 곧 전문인력을 요구하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그럼, 식약처는 전문인력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을까?
최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심사관 인력 충원을 위해 25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으며, 이 중 일부를 임상심사위원(의사 심사관)의 충원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부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내부 예산 부족으로 심사관들이 수십명 사직했지만, 결원에 대한 충원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평가원장이 기획재정부에 부탁해 25억원을 확보했다고 들었고, 이로 인해 간신히 결원에 대한 충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평가원장의 노력에는 감사하지만, 결원 충원을 위한 25억원과 연구사업비 280억원, 그 규모에 있어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식약처의 전문인력 부족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굵직굵직한 이슈들, 즉 발사르탄 사태, 인보사 사태, 인공유방 사태, 라니티딘 사태 등은 전문인력 부족과 이로 인한 안전관리 부재 및 심사의 질 저하가 결국은 국민과 환자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식약처의 전문성 저하는 안전에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토록 외치고 있는 바이오산업, 제약산업 육성에도 결국은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안전이라는 토대 없이 진정한 의미의 바이오산업, 제약산업 육성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은 미국 FDA의 자문을 받아 1년 내에 의사 심사관 700명 이상을 충원했다. 중국이 국민과 환자의 안전만을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국가의 산업에 발전이 된다는 점을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식약처의 전문인력 부족에 대해서 매우 오랫동안 문제제기가 됐고, 이번 국감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졌지만 왜 식약처는 획기적인 전문인력 충원을 하지 않을까?
본인은 의사 인력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식약처에는 해외 규제기관 대비 의사 인력이 매우 적다. 예를 들어 미국 FDA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800명 이상이지만 평가원에는 11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식약처의 인적자원이 FDA의 1/10 수준임을 감안하더라도 의사가 80명 정도는 돼야 된다.
의사만 부족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데이터/통계 전문가, 약리 전문가, 비임상 전문가 등 광범위하게 전문가가 부족하다. 식약처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내부 전문가 확충에 사활을 걸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최근 식약처가 발표한 정책들은 주로 외부 전문가 활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면 10월 22일 식약처는 바이오의약품 허가 심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4개 학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규제기관이 전문가 집단과 소통을 활발히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고, 본인 또한 내부에서 여러 차례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외부 전문가 집단과의 소통과 외부 전문가 집단과의 '업무' 협약은 매우 다른 것이다.
식약처가 발표하고 있는 외부 전문가와의 업무협약 내용들을 보면, 규제 기관이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전문 영역을 외부 기관에 외주(아웃소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해외 규제 기관도 이렇게 내부 전문가가 심사해야 할 영역을 외부 전문가와의 업무협약으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외부 전문가는 맡은 바 사안에 대한 책임감, 규제적인 측면에서의 관점, 국민과 환자의 안전 중심적인 사고체계 등에서 내부 전문가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내부 전문가를 확충하지 않는 이유로 예산을 핑계로 든다. 또 전문가, 특히 의사들의 경우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전문가를 더 확충할 예산이 없는 식약처가 연구개발사업에는 어떻게 280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투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책 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연구는 과제를 정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식약처에서 2년여간 일하면서 의약품 관련 연구개발사업의 결과가 직접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업무에 참고하라고 공람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또 마땅히 정책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연구는 정책에 반영이 안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식약처는 개발 중인 신약의 안전성 정보인 DSUR(Development Safety Update Report)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지만, 정책에 반영해 시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난 8월8일 임상시험 5개년 발전계획에는 DSUR을 마치 새로운 제도인 것처럼 삽입했다.
연구개발에 투여되는 돈도, 전문가 인력 충원에 투여되는 돈도 모두 국민이 내는 소중한 세금이다. 과연 국민과 환자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어디에 투여되기를 바랄까? 국민과 환자는 식약처가 현 시점에서 연구를 잘하기보다는 마땅히 해야 하는 실무부터 잘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식약처가 가지고 있는 예산에 큰 변화가 없다면 280억원과 25억원은 그 사용처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