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조커'는 관객의 호불호를 떠나 소위 가장 핫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차별과 배제 등 감추고 싶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광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발작적인 웃음은 위화감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결국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에서 전국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한 그는 분노와 광기로 끝내 살인마 '조커'가 되고 만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끔찍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따른 살인의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사회가 부담해야 할 몫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케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의사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영화 '조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게 한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는 50만명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정신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또는 재활시설에 등록돼 있는 정신질환자는 약 1/3 수준인 17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33만명 정도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로 인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시발로 최근의 정신과 의사 살해사건, 진주 안인득 사건 등 참담한 사건들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세간의 심각한 우려를 낳았고, 이들에 대한 정부의 관리대책과 제도개선을 강력히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행정입원 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마저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효과적일 것으로 보이는 몇몇 정책마저도 인력 및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1.5%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WHO가 권고하는 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따라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예산 확대를 통해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관리체계를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한편, 정부의 책임 아래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확립하는 것과 더불어 반드시 수반돼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개선과 조기 진료 및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완치되기가 쉽지 않지만 적절한 치료가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질병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질환자는 실제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다. 따라서 모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사회적 격리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는 필요충분한 대책이 아니다.
다행히도 의료인 선배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2, 3인 병실의 보험급여는 정신병원과 의료재활시설에서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확대됐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약제비용을 '일당정액제'가 아닌 별도로 분리 청구할 수 있게 돼 좋은 약을 싸게 처방받을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적절한 치료 및 케어를 위한 의료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필자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 자폐통합센터라 할 수 있는 'Emory Autism Center'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자폐질환자의 치료 및 연구는 물론, 자폐질환자의 부모를 대상으로 올바른 케어방법을 교육하고, 나아가 자폐아동과 일반아동이 함께하는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정 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들이 환자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넘어 환자와 관련한 행정 및 교육 전반에까지도 역할을 확대해야함을 시사해주는 현장이었다.
의료인은 정신질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며, 정신질환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료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환자의 감정을 주의 깊게 살피고, 완치 후 환자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금도 밤낮 없이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는 과도한 주문일 수 있겠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고, 그들이 차별과 배제 없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의료인들의 사회적 책임감과 행동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