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계에서는 다소 낯선 직업군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제약의사(Medical Science Liaison, MSL)'들. 제약의사라는 명칭은 1967년 미국에 거점을 둔 다국적제약회사인 UPJOHN(현 화이자 사업부)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해외현황을 살펴보면 미국 내에서만 매출 상위 100위권 제약사에 소속된 제약의사의 수가 5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국의 경우 FBM(field based medicine), 메디칼어드바이져(Medical Advisor), 메디컬 디렉터(Medical Director), MSL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며 현재 150명 이상이 현업에서 활동 중이며 앞으로 그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과 2월 3일 양일간에 걸쳐 한국로슈 의학부 김요한 이사를 비롯한 한국 베링거인겔하임 의학부 이선우(대사성질환 사업부), 조은영(호흡계 사업부), 김소향(항암제 사업부) 이사를 직접 만나 제약의사 진로에 대한 자세한 뒷얘기를 들어봤다.
제약의사 "환자들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 것인가 고민 필요"
"어떤 고민에서 임상의가 아닌 제약의사라는 길에 궁금증을 가졌나요? 대게 전공의를 마치고 개원하는게 가장 보편적인 길일 텐데…"
한국로슈를 방문한 첫 날 회의실에서 만난 김요한 이사(임상약리학 전문의)는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의대 본과 1학년 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름 방학기간에도 시간을 쪼개어 대외활동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터였지만 쉽사리 답을 하지는 못했다. 단순히 '번아웃' 이슈가 비일비재하게 반복되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워라벨 문제가 대답은 아니었다.
김 이사는 의료계 내 제약회사의 역할과 제약의사의 길에는 다른 관점을 주문했다.
"제약회사는 치료제라는 도구로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요. 진료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다양한 환자들에 도움을 주는 것, 환자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가치를 전달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분야가 제약의사의 비젼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얘기인 즉슨,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의미를 가지는 방법으로 환자를 돕는 것이 첫 번째 고려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제약회사로 진로를 희망하는 의대생 후배들에게는 제약사 문을 두드리는 과정 속에서 직업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정보를 얻기가 수월합니다. 주변 지인을 통해 제약사의 채용정보를 얻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인터넷 등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직접 부딪혀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진료경험 갖춘 제약의사 "지시형 소통 지양, 양방향 협력관계 중요"
그렇다면 제약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료 경험'이 첫 번째였다. 책으로 볼 때와 환자를 마주할 때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나 질이 다르며, 그만큼 진료 경험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노하우도 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요소 때문에 제약의사를 선발할 경우 일반의보다는 전문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는 게 이들의 설명.
이어 베링거인겔하임 의학부 조은영 이사는 논문 작성 경험도 강조했다.
"두 번째로는 논문 작성 경험도 빼놓을 수 없어요. 메디컬 디렉터의 특성상 논문을 연구할 일이 많은데, 전공의를 거치며 논문작성 경험이 있다면 어느정도 유리한 부분이 있어요."
실제 전문의 중에서도 약물 투여경험이 많은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과 전문의를 선호하기도 하며 종양학 전공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적극적인 스카웃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외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디바이스 등의 사용과 관련해 응급의학과, 외과전문의 등을 우선 채용하기도 한다는 설명.
김소향 이사는 소통 능력도 강조했다. "학문 외 영역으로는 의사소통 능력도 중요해요. 지시형의 일방적인 소통이 흔하게 이뤄지는 병원과 달리, 제약회사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양방향 소통이 매우 중요하죠."
때문에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한 리더십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과대학의 험난한 교육과정을 힘겹게 따라가는 의대생이라면, 한 번쯤은 워라벨이 보장된 편안한 진로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약의사들의 삶의 질에도 궁금증이 따른다.
이 같은 의문에 이선우 이사는 우문현답을 내놨다.
"병원과 제약사라는 현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곳이 절대적으로 더 힘들다는 기준은 어패가 있을 수 있어요. 제약의사들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시기엔 야근이 잦다는 점과, 단순히 워라벨만 좇아서는 버텨내기가 어렵죠. 약 70%의 인원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는 것만 봐도 목표 설정이 얼만큼 중요한지 알 수 있겠죠."
두 곳의 제약회사를 방문해 만난 제약의사 선배들은 진료실 현장을 누비는 임상의들과 다르지 않게, 제약산업 현장에서 환자들에 올바른 가치 전달을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명을 위해 같이 힘쓴다는 점에서 '비록 흰 가운이 아닌 다른 옷을 입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의료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많은 환자들에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미래 의료인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