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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치매 환자 돌봄 문제, 사회 제도적 보완 시급"

원종혁
발행날짜: 2020-03-23 05:45:50

[메타 인터뷰]석승한 치매학회장
"질환명칭도 변경 움직임, 인권문제 및 완화치료 고민해야"

전 세계 노령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2019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2.7세(남성 79.7세, 여성 85.7세)이며, 치매 유병률은 약 75만명으로 조사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치매 환자 수를 약 5천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2050년경에는 치매 환자 수가 현재보다 약 3배 증가한 1억 5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대표적 노인성 질환으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치매 환자 돌봄 문제는, 더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이자 국가적·세계적인 부담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최근 WHO는 치매 이슈를 글로벌 보건 아젠다로 끌어올리며 '치매 위험 관리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공표하고 나섰다.

석승한 교수.
메디칼타임즈와 만난 대한치매학회 석승한 회장(원광의대 산본병원 신경과)은 "우리나라도 치매 예방과 조기진단, 치료 등 치매 전반에 관심이 높다. 이에 따라 관련 법과 제도 등은 개선되고 있지만 환자의 인권, 치매 환자 가족들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라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결국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노인 친화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적 측면과 복지적 측면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일단, WHO가 내놓은 치매 위험 관리 방안을 통해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 것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석 교수는 "치매 질환이 이제 국가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보건 아젠다이자 화두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기상 가이드라인 발간 시점 또한 적절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치매 유병률과 발생률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가운데, 범국가적 차원에서 ▲치매 고위험군 관리 ▲조기 진단 및 치료 ▲치매 예방에 장기적인 관리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국제연합(UN)에서도 이미 10년 전부터 치매 대응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노력을 권장해왔으며 관련한 회의를 진행해왔다"며 "우리나라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치매를 국가적 아젠다로 삼아 대응 체계를 마련해나가고 있기에, 글로벌 기준에 발 맞춰 나아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2008년 치매와의 전쟁을 처음 선포한 뒤 2010년부터 치매관리법을 시행했으며, 2017년부터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 중에 있이다.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에는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으며, 행동심리증상(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이하 BPSD)이 있는 중증 치매환자들을 위한 치매안심병원을 확대 중인 분위기다.

석 교수는 "최근 20년간,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국내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가 많이 늘어났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가 치매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조절 가능한 위험인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가적으로도 치매 예방, 조기 발견 및 조기 치료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증가세 "포괄적 관리, 환자 맞춤형 서비스가 관건"

이번 WHO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치매 통합적 관리' 부분의 해석도 중요한 대목이다. 여기서 치매의 통합적 관리는, 질환의 예방부터 환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 관리'와 각 환자의 상황에 근거한 '환자 맞춤형 서비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치매의 포괄적인 관리는 질환의 예방부터 완화치료(palliative care)까지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관점이며, 치매 환자가 처한 상황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환자별 사례관리를 통해 환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치매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30~40%는 예방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는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WHO 가이드라인에서 활발한 신체 활동, 비만 예방, 금연, 금주, 고혈압·당뇨 조기 치료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치매와 연관된 유전적 요소인 ApoE 4 유전자의 경우 조절 불가능한 요인이지만,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소 중 조절 가능한 부분도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금주와 금연을 실천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뇌에 꾸준히 자극을 주는 공부를 하고, 고혈압 및 당뇨를 조기부터 열심히 치료하는 등의 생활습관은 뇌혈관 질환을 야기하는 위험 인자들을 줄여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석 교수는 "혈관성 인자와 뇌혈관 병변은 알츠하이머형 치매 증상 발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와 건강한 노인을 비교해보면,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의 뇌졸중 발생 확률이 약 2~3배 높다"며 "뇌졸중과 치매는 공통 경로(common pathway)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뇌졸중은 혈관성 질환으로 인해 일찍 발생하는 것이고, 치매는 나이가 든 이후 늦게 발견된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약물치료에도 치매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약물치료의 혜택에 대해서는 "치매의 약물 치료는 조기에 진단하고 조기부터 치료할수록 효과가 크다"면서 "치매 약물치료는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늦출 수 있고, 인지 기능을 일부 개선과 더불어 일상생활 기능을 개선해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치매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 것은 맞으나, 치매 환자가 갖고 있는 많은 증상들은 약물 치료 및 비약물 치료를 통해 호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생각보다 많다"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조기치료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환자의 인지기능 및 일상생활 기능이 개선 및 유지되면 환자 삶의 질이 높아지고, 병이 악화되면서 생길 수 있는 가족과의 마찰 등을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조기 진단에 이어 조기 치료가 중요한 것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인 부담을 모두 낮춰주는 여러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 대표적 인지기능 개선제인 '도네페질'의 경우 경도 및 중등도, 중증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에서도 이러한 일상생활 수행능력 유지를 비롯한 이상행동 및 인지기능 개선 혜택이 제시된 바 있다.

이슈1. "어리석어지는 병, 치매? 인권문제 진지한 고민 필요한 시점"

최근들어 치매 관리 부문에는 새로운 화두로 '치매 환자의 인권' 문제가 강조되고 있다. 치매 환자의 인권과 삶의 질은 직결된 문제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며, 개인적으로 매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라며 "치매 환자의 인권과 더불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인권까지 존중 받는 사회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치매 환자의 완화치료와 완화치료 안에서 환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최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10년간 WHO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치매 환자일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생을 잘 마감할 것인지는 중요한 이슈"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질환명칭 변경에 대한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석 교수는 "먼저 치매라는 질환명부터 고민을 해봐야 한다. 치매는 질환명이 아니며,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 '어리석을 매(呆)'가 결합된 단어이다. 치매란 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뇌 관련 여러가지 질병 때문에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환명 때문에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상처가 되고 낙인 효과를 준다. 이에 최근에는 WHO와 UN에서 치매(Dementia)라는 명칭 대신 '인지기능저하(Cognitive disorder)'라고 명명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일본과 대만도 치매라는 명칭 대신 인지증(認知症), 실지증(失智症)’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무엇보다 환자 인권에 대한 문제 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치매환자는 판단력, 독립적 의사결정기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기 쉬우나, 치매 환자의 인권과 존엄성은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국가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치매 조기 진단 및 조기 치료와 더불어 말기 치매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완화치료가 중요해지는 이유"라며 "치매 환자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족들까지 함께 지원해야 한다.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며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완화치료가 암 환자에만 집중되어 있는 상황. 석 교수는 "다행인 것은 완화치료의 대명사인 호스피스의 영역은 시범사업을 통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만성질환자, 만성 신부전증, 만성 폐 질환 등 치매를 포함한 만성질환자들도 완화치료가 필요한 대상이며, 호스피스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면서 "그러나 아직 치매환자의 완화치료는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새로 발표될 제4차 치매관리종합대책에서는 이러한 부분까지 좀 더 세심하게 계획하고 제도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슈2. 치매 환자 돌봄문제,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노노케어

여기서 고민도 나온다. 학계에서는 가장 큰 문제로 치매환자를 '누가 돌볼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돌볼 것인가' '언제부터 돌볼 것인가' '이에 따른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불어 '가정에서의 돌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요양 시설에서의 돌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노인병원 및 요양병원에서의 돌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돌볼 것인가' 등도 부수적인 문제. 석 교수는 "이는 4~5년전부터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상 가정에서는 주로 가족들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데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경우,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우며 치매 환자 관리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에 여러 가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환자와 동일하게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으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흔히 '보이지 않는 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

석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요양병원의 돌봄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요양병원을 관리하나 병원 내 돌봄 서비스는 국민건강보험 체계 및 장기요양보험 체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아 가족이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며 "요양보호사처럼 교육을 받은 인력이 아니고, 대부분이 중국 동포이며, 내국인이더라도 나이가 너무 많은 경우가 대다수여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일명 '노-노 케어'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간병 인력이 유입되고 있으나 의사소통과 문화 차이와 관련한 문제도 발생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따라서 일본의 '개호보호사' 처럼 정식 직업군으로 만들어 노령화 되고 있는 돌봄 제공자들을 대체해 젊은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 노인 환자들에게 질적 수준을 담보한 돌봄 제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치매 환자의 인권, 치매 환자 가족들의 삶의 질, 치매 환자의 웰다잉 등을 포함한 사회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한편 대한치매학회는 2020년에 중점 사업으로 치매 환자의 사회적 인식 개선과 치매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데 노력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끝으로 "하지만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19 이슈가 있어 전반적으로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치매학회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치매 환자의 미술 치료 등을 지원해왔는데, 올해는 환자 가족 모임 조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춘계 학술대회 등은 모두 연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치매 환자 가족 모임과 치매 환자 인권 향상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을 위해 지역 사회 활동가로서 계속 임할 생각이다.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체계화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 시스템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 및 홍보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