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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할 수 있는 보건의료 현장이 되길 기원하며

노상엽
발행날짜: 2020-06-15 05:45:00

노상엽 병원준법지원인협회 이사
노상엽 대한병원준법지원인협회 재무이사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2019년 1월 시행됐다.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중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기존에도 제12조를 위반해 응급의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 손상 또는 점거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국회는 왜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법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뒤따라 개정되었는데 의료인 등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형법상 법정형 보다 가중 처벌하는 등의 내용이다. 바로 제12조 제3항으로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보호법익을 직접적으로는 응급의료종사자와 의료인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인 등을 두텁게 보호함으로써 응급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 없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는데 주목할 내용은 경찰청의 경우 진료 중 폭력 및 폭행 사건은 보건의료기관 종사자와 주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해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도록 했다.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의료인이 범죄행위, 의학적 사유 등 합리적 사유가 있을 경우 진료거부도 가능하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 내에서는 폭행으로 응급의료종사자가 폭행을 당하거나 의료인이 감금을 당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건의료 현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의료기관 사용자는 폭행(暴行)과 상해(傷害)의 개념을 정확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폭행(暴行)'이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 유형력의 행사를 말하는 것인데,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것 뿐만아니라 피해자에 근접해 욕설을 하면서 때릴 듯이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도 폭행에 해당한다.

상해(傷害)란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사기관에서는 폭행에 수반된 상해가 경미해 폭행이 없어도 일상생활 중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상처나 불편정도이고, 자연적으로 치유되면 상해죄의 상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정 성범죄로 인해 피해자가 불안, 불면, 악몽, 자책감, 우울감정, 대인관계 회피, 일상생활에 대한 무관심, 흥미상실 등 정신과적 증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해당한 것은 상해를 입은 것이라고 판단한 판례도 존재한다.

한편, 중상해는 생명에 대한 위험 여부, 불구 여부, 불치나 난치 질병 여부, 대화 또는 보행 가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는 '교통사고에 대한 대검찰청 업무처리 지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수사기관에서는 의료법 제12조 제3항 위반의 죄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 위반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 위험범'이 아닌 '추상적 위험범'으로 해석할 것을 요청한다.

위험범은 위험에 대해 고의가 필요하다는 구체적 위험범과 고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구별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행위가 실제로 위험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위험성이 인정될 수 있으면 범죄의 구성 요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교통방해죄, 현주건조물방화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법 해석의 법리에 따라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기초를 두고 입법 취지와 목적, 보호법익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라며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행이 교통질서와 시민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아 이를 가중 처벌하는 추상적 위험범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여기에다 사람을 상해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에 이르게 하면 보다 중한 형으로 처벌하는 '결과적 가중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런 대법원 판례를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 적용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건의료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수사단계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 범죄에 강력 대응해야 할 것이다.

셋째, 병원 행정직원이나 보안요원도 법에서 보호해야 한다.

의료법 제36조(준수사항) 제11호인 의료인 및 환자 안전을 위한 보안장비 설치 및 보안인력 배치 등에 관한 사항이 신설되었는데, 이와 같은 업무는 의료기관 내 행정직원이나 보안요원 등이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서 보호하는 대상에 병원 행정직원이나 보안요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응급의료센터 내에서 위법 행위가 있더라도 단순 폭행, 상해, 모욕 등의 범죄로 처벌되고 있어 해당 법의 취지가 무력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법의 객체 범위에 행정직원과 보안요원 등을 두루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행 또는 상해 피해를 입은 직원을 보호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의료법과 응급의료법 위반의 죄로 인해 근로자에 대한 건강장해 등이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에 따라 법무조직의 적극적인 노력(의견서 작성 및 수집한 증거자료 등의 제출)과 법률지원을 통해 의료기관 종사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