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의료계의 미래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정책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의료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감시할 수많은 젊고 영민한 눈이 생겼다. 의사 집단 배제라는 기존의 관행은 어쩌면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둘째, 전공의 의대생들이 조직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내외부에 공히 증명했다.
게다가 전공의 의대생들은 그저 집행부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한 움직임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었다. 내부의 이견들을 비교적 잘 통제 혹은 조율하면서 비교적 장기간의 파업투쟁을 벌였다. 이는 젊은 세대들의 소통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 대중과 집행부가 SNS를 통해 양방향 소통을 매일 지속하는 모습은 PC 통신 세대인 40대 의사에게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셋째, 미래의 의사들은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번 투쟁에서 정부 여당은 당연하게도 의사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었다. 대부분은 무시해도 좋을 법한 것이었으나 일부는 뼈아팠다. 가장 뼈 아팠던 것은 대안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이었다. 아직 의사들은 반대를 넘어 대안적 정책을 생산하고 제시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왜곡된 의료정책에 대한 분노의 크기와 대안의 크기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대생 시절부터 의료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해 온 젊은 의사들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정책 논리로는 관료나 국회의원들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을 때마다 투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전에 정책을 생산하고 이 정책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젊은 의사들이나 의대생들 상당수는 이 점을 인지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부수적인 자산도 얻었다.
첫째, 공인으로서의 의협 회장의 언행이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을 많은 의사들이 가지게 되었다. 최대집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어떠한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약속을 져버렸다. 자신이 촉발한 논란에 대한 대응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리고 그 논란들은 고스란히 전문가 단체로서의 의협의 공신력 혹은 전문성 하락으로 되돌아왔다. 이 하락한 공신력과 전문성은 투쟁 시국에서 큰 부담이 되었다. 이제 단지 싸움 잘할 것 같은 인물을 회장으로 뽑는 관행은 지양될 것이다. 하기사 싸움만이라도 잘했다면 또 모르지만.
둘째는 의사이면서도 의사 집단을 객체화하고 동료들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들과 공공성 강화라는 미명 하에 한국 의료를 장악하려는 이들의 존재를 젊은 의사들이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이들의 적이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부화뇌동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의정합의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이 자산들은 큰 수확이다. 이 자산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며 어떻게 키워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의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