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의대 의예과 2학년 최시연|"여러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했을 수많은 노력과 고민을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왔으니, 부디 힘들었던 일은 내려놓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수없이 고민하고, 처한 현실에 무력함과 불안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선배와 동기들을 보며 수없이 힘을 얻었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온 우리에게, 첫 수업의 해부학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짧은 문장 안에 우리와 함께하셨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괜히 울컥하며 피피티의 첫 장을 넘겼다.
길었던 여름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올 즈음,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복귀하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왔으며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정책 상설감시기구’ 가 출범되었다. 하지만 모든 단체행동이 중단되었음에도, 여론의 거센 국시 구제 반대 아래 본과 4학년들이 국가시험을 다시 응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의료인의 의견을 듣지 않는 현 정부의 정책 아래, 의료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전국적인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지켜왔던 최전선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길밖에 없었다. 이러한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의 외침을 집단이기주의로만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 학생들은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 또 이 깊은 골을 어디서부터 메꾸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막막한 고민을 한다.
문득 작년과 올해에 배웠던 '인간과 사회와 의학' 이라는 과목에서, 환자 또는 타인과의 의사소통 방법에 관하여 들은 수업 내용이 관련될 수 있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학교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우리가 현재 의료윤리학을 배우는 데에는 이와 관련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의료윤리학이 의학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 들어온 역사는 20년 전의 의료 파업과 관련이 있다.20년 전 우리는 지금과 유사한 상황을 겪었고, 부당한 의료정책에 맞선 의료 파업이 진행되었다.
6개월간의 의료대란을 통해 의학을 보는 관점이나 철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은 의료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의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의학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환자의 신뢰를 얻고, 환자와 상호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윤리학 및 의료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의과대학을 포함한 의료계에 널리 수용하게 된 것이었다.
국가적인 의료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정책의 개진을 위해 의료인들은 의료윤리학의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상생을 위해서는 어느 한 집단의 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20년 전의 파업에서 의료인들이 의료윤리학을 발전시켰듯이, 국민들도 건설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의료분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가져야 올바른 의료정책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의학은 철학 분야의 일환으로서 발전해왔다. 근대 의학이 경험과 실증에 기반을 두게 되면서 철학과는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의료인은 의료기술자들이 아닌 의학자들이며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의료윤리학과 의학철학의 존재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이야기하며 의료인 파업의 부당함을 외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의료인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무게를 알고 있는 의학자들임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의료인, 국민과 정부 사이의 협력을 이루는 것은 어느 한 측의 희생도 아닌, 양측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면에서 의료윤리학의 발전은 의료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학문이 아니다. 의대생으로서, 현재의 의학교육은 과거의 피드백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학의 역사임을 새로이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