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저출산에 코로나19 직격탄...탈소청과 움직임 포착 소청과의사회, 소아청소년중재요법료 등 수가 신설 제안
|기획|저출산+코로나19, 위기의 소아청소년과
저출산에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혹한기를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소아청소년과 폐과 추진"을 외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의 말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메디칼타임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고군분투를 들여다보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봤다. [편집자주]
(상) "성인환자 진료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신풍속도
#. 서울 A소아청소년과 원장은 최근 의원 간판을 새로 달았다. 과거 'OO소아청소년과'라고 적혔던 간판에 '진료과목 내과'를 추가했다.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는 보호자들 위주로 처방을 하다 보니 성인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 전라북도 전주 B소아청소년과는 최근 진료 대기실에 혈압기를 들여놨다. 조부모가 손주를 봐주는 시대에 만성질환 관리가 필수인 집단을 공약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의원 곳곳에 만성질환 진료도 가능하다는 각종 안내 포스터도 붙였다. 덕분에(?) 손주를 데리고 의원을 찾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혈압을 재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혈압 결과를 들고 들어온 보호자의 만성질환 진료상담까지 이어지는 일도 비일비재 해졌다.
저출산에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소아청소년과 개원가는 유례없는 혹한기를 겪고있다. 그러다보니 소아청소년 환자만 전담한다는 색깔을 지우고 성인 환자에까지 진료 영역을 확대하려는 탈소아청소년과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소청과는 신생아부터 청소년까지 내과적 질환을 치료하는 진료과다. 2007년 소아과에서 소아청소년과로 이름을 바꾸면서 청소년으로 진료영역을 확장하고 전문성을 제고했다.
하지만 2000년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에는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소아청소년' 만으로 진료활동을 하는 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됐다. 소아청소년과가 커버할 수 있는 환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코로나19 대유행 직격탄을 맞았다. 환자,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발길을 뚝 끊은 것이다. 소청과 의원의 경제적 타격은 각종 통계 지표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1~8월 표시과목별 의원급 의료기관 폐업 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소청과 의원은 8개월 사이 126곳이 폐업했다. 지난해 통틀어 98곳이 폐업했는데, 아직 2020년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숫자를 훌쩍 넘었다.
통상 폐업 기관은 새롭게 문을 여는 의원 숫자를 넘어서지 않는데, 최근 5년 사이 처음으로 소청과 의원 폐업 숫자가 개원 숫자를 역전 했다. 올해 8월까지 문을 연 의원은 87곳이다. 단순 비교를 위해 지난해 자료를 보면 2019년 개원한 소청과 의원은 114곳이었고, 문을 닫은 의원은 98곳이다.
"성인도 진료하자" 이제는 생각에서 실천으로
최근 고민 끝에 폐업을 선택한 한 소청과 원장은 "출산율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환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라며 "사실 고등학생만 돼도 소청과는 잘 오지 않는데 이들마저 성인이 되면 환자가 정말 줄어들겠다는 위기감이 왔다"라고 토로했다.
서울시 소청과의사회는 아예 소아청소년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소청과 의원에서 독감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일선 개원가에 배포했다.
서울 소청과의사회 김태연 총무이사는 "진료영역 확대 차원에서 소아청소년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독감 백신을 맞자는 내용의 포스터로 이미 2년 전부터 배포했다"라며 "사실 소청과가 진료영역 확대를 꾀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연수강좌에서도 성인진료 부분은 꼭 한 두개씩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개원 환경 자체가 엄청 힘들어지다 보니 올해 단순히 생각에 머물던 것을 현실화 해야 겠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예 소청과 색을 없애고 '의원' 간판으로 개원을 한 소청과 전문의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달 0~20세 미만 소아청소년 비율은 전체 환자의 40% 수준"이라며 "소아청소년은 소아과 전문의라서 찾고, 성인은 이비인후과, 내과라고 적힌 진료과목을 찾아온다. 소청과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말했다.
통증, 만성질환, 피부미용, 비만 분야를 공부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서울 C소청과 원장은 "성인과 소아비만 진료에 대해 공부하기 위한 온라인 카페가 올해 생겼다"라며 "소아청소년 환자에만 머무르고 있어서는 안되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는 생각으로만 있었다면 이제는 실천에 옮기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 D소아청소년과 원장도 이달부터 약 한 달 동안 동료 의사에게 '통증치료'에 대해 배우기로 했다.
그는 "소청과 진료만 하는 것은 안되겠다는 생각은 굳혔다. 대신 미용을 할지, 통증을 할지 고민하다 만성질환과 통증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라며 "코로나 사태까지 겪으면서 소청과는 회생 불가라고 판단했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소청과 의사들의 호소 "어떤 형태로든 정책가산 시급"
위기에 몰린 소청과 의사들은 개원가에서 소청과 의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어떤 형태로든지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정부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7월 복지부 보험급여과를 찾아 소아청소년중재요법료 신설, 소청과 전문의를 위한 정책가산을 요구했다.
소아청소년중재요법료는 보호자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소청과 만의 특성을 반영한 수가다. 보호자는 현재 아이에게 찾아온 다양한 이슈를 의사에게 질문한다. 질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대처법 등에 대한 교육부터 아이의 발달 여부 및 영양상태 평가, 사춘기 문제에 대한 중재, 전자 미디어 노출, 나이별 맞춤 훈육 등 질문의 주제도 다양하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적극 개입해 의학적으로 상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인동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수가다. 수가 수준은 상담시간에 따라 수가를 매기는 정신요법료를 참조하면 된다는 게 소청과의사회의 제안이다.
임현택 회장은 "몇 년에 걸쳐서 수도 없이 두텁게 자료를 만들어 정부에 제안했지만 묵묵부답"이라며 "소아 환자를 볼 의사 자체가 없어질 상황에 처했다. 어떤 이름을 붙이든 소아청소년과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청과 개원가 수입은 비급여 보다는 기본 진찰료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만큼 진찰료 인상도 고려해야 할 부분.
김태연 총무이사는 "소아 환자는 의사뿐만 아니라 보조 인력까지 기본 두 명이 투입된다"라며 "진찰도 청진은 필수고 귀와 목은 꼭 들여다본다. 주사 하나를 놓더라도 우는 아이를 달래가면서 해야 한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진찰료는 1만원 수준에서 해마다 100~200원 오르는데 그친다"라며 "소아 환자 특성을 반영해 오히려 가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