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 에 소개된 소위 '부캐''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부캐라는 단어는 원래 게임 용어로 본 캐릭터가 아닌 새롭게 추가한 부캐릭터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 유재석에게 여러 부캐릭터들을 설정하고 기존 본업인 MC로서의 모습이 아닌 부업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슷한 움직임은 다른 매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Youtube)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반의 스트리밍, 영상 플랫폼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인해 현재 개인 콘텐츠 시장이 매우 활발하게 팽창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까지 기존 본업과 다른 부캐를 콘텐츠로 하는 영상으로 제작, 유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부캐의 창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흐름은 여러 질문들과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줄기차게 '자아정체성' 이라는 단어를 들어왔다. 직업과 진로를 결정할 때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한다는 가르침을. 하지만, 일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대와 매우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퍽퍽한 하루 하루를 견디며 내가 바라던 것과는 많이 다를 지라도 스스로를 달래며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고 어릴 적 낭만을 치기 어린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간다.
다소 서글픈 삶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즐겁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 여부 혹은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부캐를 탐색하고 도전해 삶의 의미를 찾으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사회의 트렌드와 의료인 혹은 예비 의료인인 의대생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인 드라나 에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5명의 동기 의대교수들이 바쁜 일정 속에도 매주 한번씩 모여 밴드 연습을 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 바쁜 일과 중에서도 밴드 연습을 할 때 밝게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이처럼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동아리의 형태로 본업과 다른 활동을 장려하고는 있지만, 사실 위에서 언급한 부캐와는 다른 성격의 취미 공유 혹은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한 동아리 차원이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본업 외에 부캐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의사 혹은 의대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의학 상식을 전달하고 잘못된 건강 상식을 바로 잡는 youtube 의학 채널들이 있다. 여러 다른 전공 분야의 전문의 선생님들께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의학 상식을 제공하는 것은 본업이 가지는 전문성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좋은 부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많은 의사 선배님들께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울의대를 졸업하시고 안과 전문의를 취득하신 후 서울대 안과 교수로 계시는 서종모 교수님은 서울공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겸임하신다. 이 경우 역시 본업의 전문성을 부업에서도 연계하여 환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부캐의 예이다.
창업 분야에서는 더 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DHP(Digital Healthcare Partners)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김준환 선생님의 본업은 서울아산병원 입원전담의다. 생활습관과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건강을 관리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벨트 회사 ‘웰트’의 강성지 대표이사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출신이다. 대구 지역의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신약 개발 회사 ‘아스트로젠’의 대표 이사 황수경 대표의 본업은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이다. 또한, 최근 원격 비대면 진료로 급부상하고 있는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대표는 놀랍게도 의대생이다.
예시로 제시한 youtube 채널, 연구, 창업 외에도 정치, 작가, 기업 등 의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분야 역시 사회적 트렌드에 맞추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의대생으로서 크게 와 닿는 두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의사는 전문의가 가지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캐를 생성하기에 아주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렇지만 그 전문성이 전부가 아니기에 꾸준하게 내 안에 숨겨진 부캐를 발견하고 키워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환자를 실제로 마주하기 시작하는 인턴,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부캐를 발견하는 여유를 현실적으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운 의대 재학 시절 중에 부캐로 성장할 수 있는 내 안의 씨앗을 고민해보고 발견하여 새싹을 틔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