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L(problem based learning)의 첫 번째 세션 전체 내용이었다. PBL은 의대에서 이뤄지는 수업 중 하나로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자기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학습법이다. 팀원들과 상의하면서 환자의 진단명과 진단을 내리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점, 진단을 내리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정한다.
처음 받는 세션의 내용은 딱 저 문장 하나였다. 우리 팀은 경련과 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계통의 병을 떠올리려 했지만 가지고 있는 지식 내에서 가설을 세우기에는 단서가 부족했다.
두 번째 세션으로는 응급실에 오기 전 여아의 증상, 응급실에서 시행했던 일부 혈액검사결과와 긴급히 처방한 약물, 약물을 복용한 후 여아의 반응이 나타나 있었다. 이 단서들로 한 가지 질병을 강력하게 의심했다.
하지만, 세 번째 세션에서 주어진 전체적인 혈액검사와 어른에서는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경학적 징후가 영유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해당 질병의 임상적 양상으로 인해 또 다른 질병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결국, 두 질병 중 환아의 진단이 무엇인지 감별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직 전체적인 내용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지식이 부족했지만, 지식이 부족한 만큼 사소한 것도 의심하게 된다. 해당 내용을 알았더라면 환아의 증상, 질병의 특징적인 임상 양상이나 환아의 나이에 잘 발생하는 질병 위주로 추측하고 넘어갈 것 같았는데 수업을 하기 전이라 질병에 관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환아의 머리둘레 길이는 적당한지 신경계 발달이 적당히 이루어져 있는지, 불완전한 백신 접종력과 이에 관련된 감염을 일으키는 원인균 중에서 선행되는 요인이 있을지 사소한 부분에도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게 된다.
케이스를 보며 공부하는 순간에서는 이런 사소한 사항도 알아보며 개념을 확장하게 된다. 그러나, PBL 시간에서 케이스의 진단명을 찾아내려는 필자는 전체적인 내용을 모르는 채로 개념만 쌓다 보니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로 그룹 토의에 임하는 것 같아 답답한 면도 있었다.
이틀이 지난 후 두 번째 시간에 나온 세션들은 감별에 도움이 되는 추가적인 검사에 대한 내용이었고, 결국 진단명과 추후 환아의 발달 상태까지 나오며 내용은 마무리가 되었다.
교수님들의 피드백 시간 이후에서야 세션에 적혀있는 내용에서 딱 한 문장을 보며 바로 어떤 질병이 아닌지 의심해야 하고, 다른 한 문장으로는 여러 병들 중 감별을 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또 다른 한 문장으로는 해당하는 질병의 분류 중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었다.
필자나 다른 동기들은 환아의 진단이 조금 더 신경 쓰여서 검사결과나 가설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교수님들은 왜 이런 검사결과를 하고 증상이 나타나는 기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당 내용을 많이 언급하셨다.
본과 2학년이라 환자를 직접 본 적이 없고 2, 3주에 한 번씩 시험을 치는 필자의 처지에서는 많은 내용을 공부하다 보니 질병을 공부할 때 기전보다는 결과나 임상 양상 등 표면적인 부분에 대해 더 공을 들이게 된다. 문제 푸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BL을 하다 보면 환자가 처음 내원해서 진단하기까지 단순한 질병의 임상 양상보다는 기전이나 검사의 적응증 등 증상이나 신체 진찰을 바탕으로 기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감별 진단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임상에서 이론을 활용하는 것은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보다 더 깊고 자세한 기전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았다.
매번 블록 때마다 시험 치기 전 내용을 완벽히 학습하는 것은 2학기가 반쯤 지났지만 아직도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환자를 대한다는 관점으로,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차이를 메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