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레지던트가 주 48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는다고?"
2014년경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세계의대생협회(IFMSA) 아시아-태평양 컨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의대생들과 쓰나미 사태 이후 재난의학을 중심으로 공중보건, 인권, 의학교육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시아-태평양 컨퍼런스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의 의대생들이 일부 참여했었고, 그중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당시 세계의대생협회 회장도 있었다. 유라시아 반대편 의대생들이 전후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역사 등에 대해서 해박하게 알고 있어 당시 이들의 박학다식함에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강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바로 일부 유럽 국가의 전공의들은 주당 50시간 내외로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의과대학 실습학생 또한 전공의와 유사하게 약간의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게되었다. 한국의 의대생 입장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접한다는 것이 다소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절한 해결을 위하여 국제교류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관련 자료를 검색하며 이들이 말한 내용이 사실임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2013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OECD 국가 전공의 수련제도 비교 연구'에 따르면, 유럽 전공의들은 주당 56시간(2007년 3월 기준, 무려 2007년이다) 내외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추가 문헌 고찰을 통해 유럽의 전공의들은 1인당 5~10명 내외의 환자를 맡아 수련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추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교의료제도적 관점에서 국가 간 의료체계의 다소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극명한 수련과정이 차이를 낳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새롬 (2015) 등의 연구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90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었다. 이들 상당수는 직장 내 신체적 폭력, 언어폭력, 성폭력 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또한 일반 근로자집단과 비교했을 때 유의하게 높은 수준의 근골격계 증상과 정신건강 악화를 보고 하고 있었다. 숫자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실상이었다.
한편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당직수당 지급과 관련하여 전공의가 승소한 일이 있었다. (대전고법 2014. 11. 26, 선고 2013나11186 판결) 관행적으로 당시 한국의 상당수 수련병원에서는 근로계약서 등의 작성 없이 포괄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법원은 관련하여 전공의에게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당직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모두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이 도입되기 이전의 일이다.
"전공의법 바꾸고, 병원 운영체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해야"
2015년 전공의법 도입 전후로 전공의의 노동시간은 상당히 감소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진행한 '2021년 전공의병원평가'에 따르면 2021년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약 77시간 일하였다. 비록 2021년에는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2020년보다 전공의들의 평균 노동시간이 소폭 증가했으나, 5개년 추이를 봤을 때 점진적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공의법은 살인적인 전공의 노동시간을 감소시켰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전공의법이 도입된지 약 7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또 한번의 전공의 수련환경 도약을 위하여 해당 법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노동시간 측면에서 살펴볼 때, 현행 전공의법은 4주의 기간을 평균해 1주에 최대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수련할 수 없게 규정했다. 이 조항은 전공의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전공의의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80시간에 맞춰 규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주당 80시간 장시간 노동에 대한 법적 근거로 전공의법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포괄임금제를 중심으로 하여 임금과 관련한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포괄임금제란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휴일, 휴가 등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곤란하거나 적용할 필요가 없는 근로관계에 있어서 근로기준법상 제수당의 포괄적 산정에 관한 당사자의 약정 내용이 유효하게 인정되는 임금지급체계'를 의미한다. 일찍이 고(故) 김일호 전 대전협 회장은 2012년 당시 전공의뿐 아니라 봉직의, 교수 등 모든 월급을 받는 의사들이 포괄임금제의 채택으로 인하여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함을 지적한 바 있다.
이영학(2017) 또한 그의 논문 '의료기관 전공의의 노동법적 지위와 보호방안 검토 - 전공의 근로자성과 전공의 특별법의 문제점을 중심으로'를 통해 근로시간에 대한 처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방적 수련계약,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따른 임금 지급의 필요성 등과 관련해 전공의법이 가진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전공의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나 보호 규정에서 배제된다는 점, 가산임금 산정 기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 대등한 교섭 주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근로와 수련계약 체결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추가로 지적했다.
물론 이에 대해 권혁 (2016) 등은 전공의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는 전공의의 이중적인 지위를 고려해 선별적이어야 한다는 반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대법원이 수차례에 걸쳐 전공의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전공의들은 여전히 주당 88시간 내외의 살인적인 노동시간 및 주 2~3회에 걸친 36시간 연속근무 등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한편 지난 1월 대전협이 시행한 '코로나19 진료 관련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94%의 전공의가 동의 없이 코로나19 진료에 투입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이 생긴 업무때문에 전공의의 노동강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한편 응답자의 약 77%는 코로나19 업무로 인해 본연의 전공과목 수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수련교육에 있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우리 사회의 기능 유지를 위하여 지난 2년여간 전공의들의 희생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위 설문에 응답한 약 59%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약 2년여간 최소한의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고 답했다. 국가적으로 필수의료 영역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인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1인당 약 150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발표되고 있으나, 여전히 일부 전공의들은 단 한 푼의 보상은커녕 수련환경에 대한 어떠한 개선책도 전해듣지 못한 상황이다.
전공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 교섭가능한 전공의 노동조합의 설립, 근로기준법상 각종 근로자 권리를 전제로한 전공의법의 재정립, 수련환경평가 개편,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확대 등 다양한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는 전공의 사회 자체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대부분은 정부와 국회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발걸음을 떼기 어려운 일이다. 한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환자안전 확보 측면에서 입원전담전문의 고용에 대한 병원계의 의지 또한 절실하다.
2022년이 시작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다가오는 대선을 맞이해 주52시간제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는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의 2020년 기준 OECD 국가 3위(1908시간)에 해당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해당 제도를 노동시간 감축 및 노동권 확보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보다 유연한 근무시간 확보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따라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견해 차이를 떠나 전반적으로 한국의 노동시간 감축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 후보 간 어느 정도 합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2022년에 살고 있는 것이 맞다면, 필수의료인력의 열악한 근무환경 및 악화되는 정신건강 등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책임 있는 국가라면 사회기능 유지를 위하여 묵묵히 필수의료 현장을 지킨 한국의 전공의에 대한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글을 빌려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노동권을 고려한 전공의법 개정, 입원전담전문의 고용 인센티브 확대를 통한 전문의 중심의 병원 진료체계 확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함을 밝힌다. 전공의들이 사람답게 살고 제대로된 환경 속에서 수련교육을 받아 전문의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환자 안전 및 국민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정치권이 코로나19의 종식과 더불어 필요한 논의를 결코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