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퇴행성 질환을 포함한 척추 MRI 검사 급여화가 시작됐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크기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추산에 차이가 크게 나면서 건보재정 안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는데요, 막상 급여화가 본격화되자 논란은 의외의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신경학적 검사 결과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이-폼(e-form)' 시스템으로 일원화한다는 보건복지부 고시 때문입니다. e-form 시스템으로 신경학적 검사 결과를 전송해야지만 수가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린데, 이 시스템의 존재조차 생소한 의료계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복지부는 시스템 구축과 병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으로 4개월간 진료검사지 업로드 방식의 유예기간을 부여했습니다. 즉, 8월까지는 e-form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e-form이란 진료비 심사 등에 필요한 자료를 표준 서식 형태로 제출하는 시스템으로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을 덜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입니다.
기존에는 급여를 청구한 후 진료비 심사에 필요한 영상기록, 신경학적 기록은 서면이나 CD, pdf 파일 등의 형태로 제출했다. 반면 심평원 e-form 시스템과 의료기관의 병원정보시스템(EMR)과 연동하면 제출하고자 하는 서류를 단순 클릭 만으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심평원은 2019년 5월 e-form 시스템을 오픈하고, 2019년 7월 보건복지부 고시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4년째를 맞은 2022년 현재, 시스템 보급은 처참할 정도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26곳의 의료기관이 e-form 시스템과 EMR을 연계했습니다. 종별로 보면 상급종합병원 9곳, 종합병원 120곳, 병원 25곳, 의원 72곳입니다.
시스템 보급 저조의 가장 큰 이유로 심평원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꼽았습니다. 실제로 심평원은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적극 추진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이 무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스템 홍보에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EMR 시스템과 e-form 시스템을 연동하는 작업을 하려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료기관 의무 기록 정보와 표준서식 항목을 매핑(mapping)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병의원 상황에 따라 들여야 하는 비용과 노력이 다릅니다. 현재도 우편으로 온라인으로 자료를 전송하면 되는데,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시스템을 따로 연동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심평원은 시스템 보급 활성화를 위해 e-form 시스템을 정부 정책과 연결 짓고 있습니다.
e-form 시스템은 현재 진료비 심사에 필요한 표준서식 36종과 연동이 가능합니다. 혈액투석, 수혈, 신생아중환자실, 마취, 관상동맥우회술, 정신건강입원영역, 폐렴 등 7개 항목의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에 대한 환자별 조사표 정보를 e-form으로 제출토록 하고 있습니다.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e-form을 통해 퇴원요약자료, 입원 진료비 계산서 영수증,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점검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포괄수가제 참여 병원들은 모두 e-form 시스템과 EMR을 연동하고 있습니다.
한의과에서는 추나 및 첩약에 e-form 시스템을 활용토록 하고 있습니다. 추나요법은 환자 1인당 20회까지만 급여가 되는데 해당 환자의 추나 횟수 등을 e-form 시스템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추나요법을 하는 한방 의료기관 8964곳, 첩약 급여화에 참여하는 한방 의료기관 3085곳이 e-form 시스템과 EMR을 연동하고 있습니다.
심평원은 나아가 가산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진료의뢰·회송, 난임시술 의료기관 평가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신포괄수가제 e-form 시스템과 연동해야 각종 정책 가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적정성 평가 항목과 e-form을 연계한 수가도 검토 중인 상황입니다.
지난해 4월에는 협력 의료기관 사이에서 진료 의뢰를 할 때 e-form 시스템으로 전송하면 약 4450원의 수가를 가산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수가는 1만280원인데 e-form 시스템을 활용하면 4450원의 수가가 추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진료의뢰·회송 과정에서 e-form을 이용하는 의료기관이 한곳도 없다가 불과 8개월 사이 144곳까지 늘었습니다. 종별로는 상급종합병원 3곳, 종합병원 60곳, 병원 11곳, 의원 70곳입니다.
심평원 최동진 정보운영실장은 시스템의 '붐업'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인정하며 "단순히 진료비를 청구하는 데서 나아가 의료기관이 추가적으로 제출해야 할 자료들이 많다"라며 "e-form 시스템은 EMR과 연동까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되기만 한다면 추가자료 제출에 대한 행정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심평원 내 정책 부서에서 e-form 시스템 활용을 했을 때 수가가 지급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며 "특히 의원급은 청구 프로그램 업체가 매핑을 따로 해줘야 하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보통 정부 고시 형태로 나오면 청구 업체도 유지 보수 차원에서 해주는 분위기라서 비용 부담은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척추 MRI 의료기관 코앞에 닥친 e-form 연동 어쩌나
어찌 됐든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퇴행성 질환의 척추 MRI 급여를 인정받기 위해 e-form 시스템과 EMR 연동이 필수적인 상황이 됐죠.
척추 MRI 수요가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심평원이 제공하고 있는 통계를 통해 단순히 MRI 장비 현황을 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전국에 1836대의 MRI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급종합병원에는 211대, 종합병원에는 514대, 병원 773대,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에 각 한대씩, 의원에 304대가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의료기관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의료기관 EMR 시스템과 e-form 시스템을 연계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심평원의 전용 웹 포털에 접속해 관련 기록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방법입니다. 이때는 청구 번호부터 접수연도, 접수번호, 환자 정보, 입원 날짜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모두 직접 입력해야 합니다. 심평원은 청구 프로그램 개발자 업무를 돕기 위해 개발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 실장은 "신경학적 검사 결과 서식은 복지부 고시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표준화는 어렵지 않게 매핑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e-form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식을 매핑하는 게 아니라 항목별로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경학적 검사 결과 부문만 연계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