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 논란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를 처방한 병의원이 난데없이 실손보험사의 소송에 휘말렸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11개의 실손보험사가 공동으로 인보사 개발 판매 기업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송을 제기하면서 인보사를 처방 투약한 병의원에 대해서도 고소했다.
부당하게 허가받은 고가의 약제를 보험 가입자가 투여받고 이 때문에 보험사가 지급한 실손보험금을 지급했으니 반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보험사는 2019년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인보사를 처방 투약한 병의원에 대해서도 지난 9일 추가 고소했다.
소송 대상이 된 의료기관 숫자만도 의원 12곳을 포함해 126곳에 달한다. 이들 기관에게 토해내라고 청구한 금액도 총 15억1211만원에 달한다. 이 중 의원 12곳에 대한 반환청구액은 1억125만원이다.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일명 인보사 사태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보사케이주는 201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였다. 보험사들에 따르면 당시 인보사는 비급여였기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인보사 1주를 약 300만원에 구입해 환자에게는 600만~700만원 정도에 주사했다.
문제는 2019년 3월 인보사에서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유래세포가 검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식약처는 7월 인보사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인보사 제조 및 판매 중지 전까지 코오롱생명과학은 신장유래세포가 들어있는 인보사를 의료기관에 판매하고 환자에게 처방, 사용케 했다"라며 "비싼 약제비를 보험금으로 지급해왔다"라며 공동으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제약사가 도저히 판매될 수 없는 약을 건강보험제도 및 보험사의 실손보험 제도를 악용해 판로를 확보하고 판매대금(약제비)을 보험사 보험금으로 충당하면서 보험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보험사의 소송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약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만에 인보사를 실제 처방한 병의원에 대해서도 지난 9일자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인보사로 치료를 받은 환자를 대신해 보험사가 소송에 나서면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한 것이다.
보험사들은 "인보사가 법규를 위반한 의약품이기 때문에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 진료계약도 무효"라며 "결국 의료기관도 무효인 진료계약에 기해 환자에게 인보사 약제비용 및 진료비 상당의 법률상 원인 없는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환자에게 부당이득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했다.
100여곳에 달하는 병원들이 소송 대상이 되다 보니 대한병원협회로도 관련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소송에 휘말린 의료기관도 상급종합병원부터 종합병원, 의원까지 유형이 다양했다. 병협은 대응을 의뢰하는 병원들에 법률대리인(법무법인 세승)을 섭외해 안내하며 적극 지원에 나서는 모습이다.
의료기관을 상대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며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실손보험사의 행태를 놓고 법조계는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인보사를 투여할 당시에는 허가가 취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약사 부정행위에 대해 의료기관이 가담하거나 사전에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민간보험사 주장은 매우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온교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팩스)도 "의료기관은 식약처의 결정 이전에 해당 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이든 부당이득이 발생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라며 "처방 당시에는 법령상 적법한 요건에 따른 것인데 그 후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게 부당이득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실손보험사의 채권자대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무작위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실익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보통 로펌이랑 정기 계약을 맺고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적 부담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부당이득금 소송 등으로 회수하는 금액은 그대로 수익으로 남기 때문에 소송을 남발하는 데 비해 실익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소송 관련 공문 자체가 의료기관,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형 의료기관을 타깃으로 하는 이유가 합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