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원외처방약제비 1심 판결의 의미와 전망
원외처방약제비 소송과 관련, 최근 1심 재판부가 2009년 서울고법 판결을 대체로 따라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들이 줄줄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제 관심사는 대법원이 어떻게 확정판결을 하느냐로 집중되는 분위기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배호근)는 최근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9개 의료기관이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병원들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과잉 원외처방전을 발행한 위법성이 인정되며, 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비용에서 해당 약제비를 상계처리한 행위는 정당하다"고 못 박았다.
요양급여기준은 일응 합리적, 객관적인 것이며, 강행 규정의 성질을 갖고 있어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의무와 별개로 기준을 위반한 약 처방 행위는 위법하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공단이 의료기관으로부터 환수한 약제비 가운데 환자 본인부담금의 경우 공단이 손해를 입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 13부도 지난 5월 19일 명지병원과 울산대병원, 한양대병원, 광명의료재단, 백제병원, 서울아산병원, 인제대 백병원의 원외처방약제비 환수액 반환소송에서 이와 유사한 판결을 한 바 있다.
지난 2009년 11월 서울고법이 이원석 원장이 청구한 원외처방약제비 반환소송 항소심에서 이런 판결을 한 이후 서울서부지법 민사 13부, 12부 재판부가 유사한 판결을 잇따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에는 민사 13부, 12부 외에도 민사 11부, 민사 5단독, 민사 1단독 등에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이 대거 계류중이지만 변론기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이후 판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민사 11부에는 을지병원이 2007년 7월 청구한 약제비 소송이 계류중이지만 변론준비기일만 몇 차례 열렸을 뿐 아직까지 변론기일을 단 한번도 열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요양급여기준의 강행 규정성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재판부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1심에 계류중인 사건 상당수는 대법원 판결 이후까지 선고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역시 1심 판결이 난 의료기관들이 항소하더라도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대법원이 원외처방약제비사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초의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이라고 할 수 있는 이원석 원장과 서울대병원 사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2008년 8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전을 발급한 것이 공단에 대해 위법성을 띠는 행위라고 볼 수 없고, 공단에 손해를 입히기 위해 고의 과실로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전을 발급했다고 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공단은 서울대병원으로부터 환수한 41억원에다 지연이자(연리 20%) 16억원을 서둘러 가지급했다.
만약 이 같은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엄청난 지연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2심에서 환수액 41억원 중 5건의 처방(18만 6710원)만 승소했다. 서울대병원 역시 2심 판결이 나자 곧바로 61억원 상당을 공단에 반환했다.
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9년 8월말까지 원외처방약제비 환수액은 1667억원. 이중 환자 본인부담금만도 326억원에 달한다.
현재 1심, 2심 재판부가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형국인데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의료기관과 공단 중 한 곳은 대형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공단이 패소한다면 의료기관에 지급할 지연이자만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이 이원석 원장, 서울대병원 사건에 대해 언제 판결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원석 원장과 서울대병원은 2심에서 사실상 패소하자 2009년 12월 상고했다.
소장을 접수한 지 1년 6개월이 경과한 시점이어서 대법원의 결정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예상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26일 "현재 대법원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병원이 각 삭감별로 의학적 정당성과 약 처방의 불가피성을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기존 서울고법 판결을 파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우선 의료기관들은 항소를 제기하고, 확정 판결을 기다려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