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진 27일 오전 10시.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담당자는 응급환자가 이송될 것이라는 긴급연락을 받았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인한 환자들이다.
의료진과 보안인력을 제외한 20여명의 병원 직원들은 노란 조끼를 재빨리 입기 시작했다. 재난 상황 시 병원 인력과 환자 및 보호자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재난대비용 환자 현황판도 즉시 설치됐다. 환자 이름 및 도착시간, 중증도, 담당과, 진료결과 등이 쓰여져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흙으로 범벅이 된 환자 10여명이 구급차에 실려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응급의학과, 정형외과 등 관련과 의사들이 모여들어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산사태로 흙더미에 깔려 목이 부러지거나 허리가 다친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자 병원에는 “코드블랙 레벨1, 코드블랙 레벨1, 우면산 산사태로 인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코드블랙은 위기상황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있도록 마련된 기상재해 상태 암호코드다. 응급환자가 20명 이하일 때 레벨1이 발령된다. 20명 이상이면 레벨2가 발령된다.
미국 국제의료기관 평가위원회(JCI, 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인증을 받으면서 배운 재난상황 대비의 일환이다. 서울성모병원은 작년 7월 JCI 인증을 받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구조활동 중 급류에 휩쓸려 심장이 멎었다며 수도방위사령부의 한 군인이 실려왔다.
의료진은 환자의 심장이 멎은지 한시간이 지났다는 말을 듣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했다. 다행히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가까스로 숨을 쉬게 만들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오후 4시경 결국 숨을 거뒀다.
박규남 응급의료센터장은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데는 물속에 있어 체온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정상 체온이었으면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장이 정지되면 20분 안에는 병원으로 와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며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최악의 폭우가 내렸던 이날 하루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는 우면산 산사태로 26명의 환자가 이송돼 왔다. 이 중 10명은 병원을 옮겼고(전원), 응급실에 9명이 머물고 있었으며, 4명이 사망했다.
서울성모병원은 JCI 인증을 받기 위해 작년 재난대비 모의훈련을 한 후 실전은 처음으로 겪었다.
박규남 센터장은 "병원들이 특히 신경을 못쓰는 게 재난재해 시 응급상황, 안전사고 등인데 JCI가 강제하니까 더 체계적으로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팀 백은희 팀장도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가장 큰 재해 상황이었다"며 "체계적으로 대응이 되고 있어 JCI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후 2시 24분. 병원에는 응급상황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코드 클리어. 코드 클리어" 방송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