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39건 중 삼성서울병원 148건, 서울대병원 144건, 세브란스병원 129건. 국내 임상시험의 현주소다.
보건복지부가 임상시험 강국을 목표로 지난 2004년부터 지역임상시험센터를 지정하고 예산을 지원한지 6년,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많다.
이미 임상시험센터로 자리매김하는데 실패한 병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권역별 센터'로 지칭되는 지역 안배 정책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임상시험센터 사실상 실패 "균등 발전은 환상"
A대형병원 부원장은 6일 "사실 전국의 모든 병원을 균형있게 발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이라며 "권역별 센터화 사업이 번번히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환기시켰다.
실제로 복지부가 지난 2004년부터 시작한 지역임상시험센터 사업을 보면 이같은 지적에 타당성이 있다.
복지부는 선진국 수준의 임상시험 수행을 목표로 지난 2004년부터 지역임상시험센터를 선정해 5년간 매년 40억원씩 예산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서울대병원과 부산백병원이 최초로 혜택을 받았으며 2010년 부산대병원이 막차를 타며 전국에 15개의 지역임상시험센터가 설립됐다.
그러나 사업이 시행된지 6년이 지난 후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하다. 흔히 말하는 빅4병원이 대다수 임상시험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임상시험센터는 사실상 존폐위기에 놓였다.
식약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국내에서 실시된 임상시험은 총 439건이다.
이중 삼성서울병원이 148건의 임상시험을 수행해 33.7%를 차지했고 서울대병원(144건, 32.8%), 세브란스병원(129건, 29.4%), 서울아산병원(123건, 28%)이 대다수를 수행했다.
사실상 이들 4개 병원이 국내에서 실시되는 임상시험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길병원이 불과 37건의 임상시험을 맡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위권 임상시험센터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생명줄이었던 국가 예산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이미 2004년에 지정을 받은 지역임상시험센터는 예산집행이 종료됐다.
나머지 병원들도 순차적으로 예산 지원이 중단된다. 문제는 이중에 자립도가 떨어지는 기관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대한임상시험센터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지역임상시험센터로 지정된 기관 중 예산지원이 종료되면 바로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 많다"며 "솔직히 말하면 이들이 임상시험센터 육성에 관심이 있는가에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 예산을 받았다면 최소한의 인프라는 갖춰야 하는데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곳이 많다"며 "예산만 받아먹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안배 정책 우려감 팽배 "선택과 집중 필요"
이러한 사례들로 인해 정부가 추진중인 권역별 센터화 정책의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임상시험센터 등의 사례들을 볼 때 결국 예산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B대학병원 관계자는 "하나의 주제로 사업을 정하고 이 예산을 골고루 뿌리는 선심성 정책은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며 "이미 여러가지 사업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우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국 16개 시도에 예산을 분배하기 보다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병원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C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은 "정부 관계자들이 불과 몇일 동안 외국의 특성화센터를 둘러보고 예산을 정해 이를 분배하는 것이 문제"라며 "단 한개라도 제대로된 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지역 분배보다는 각 병원의 특장점을 살릴 수 있는 특성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집행된 정부 예산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권역별 특성화센터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데 수준급 호흡기센터가 10여곳이나 있을 필요가 없다"며 "이는 심혈관, 류마티스, 임상시험 모두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굳이 전국에 10곳이 넘는 특성화센터를 지정하다보니 간판만 달아놓는 센터들이 생겨나면서 예산이 새고 있는 것"이라며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제대로 예산을 지원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것이 한국 의료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