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신병원들이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면서 의사, 간호사 빼가기 전쟁을 하고 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지방의 B정신병원 K원장의 말이다.
그는 "정신병원 적정성평가에서 의료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확산되면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의료인력을 영입하는 목적이 보다 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한 게 아니라 법정 숫자 채우기용"이라면서 "심평원이 줄세우기식 적정성평가를 하다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뜩이나 의료인력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적정성평가 항목에 정신과 의사, 간호사 1인당 입원환자 수 등을 포함시키고, 평가결과와 수가가 연계될 수 있다는 식으로 심평원이 엄포를 놓으면서 인력 빼가기 전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메디칼타임즈가 12일 보도한 바와 같이 의사 연봉이 3억원대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과 인력난이 심화되고, 이 때문에 전문의 연봉이 급등한 것은 2008년 10월부터 의료인력 기준에 따라 의료급여 일당정액수가를 차등화한 직후부터다.
복지부는 2004년부터 의료급여 일당정액수가를 3만 800원으로 고정하고 이후 한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등급을 G1(5만 1000원)~G5(3만 800원)으로 분류해 일당정액수가 차등제를 하면서 평균 19.5% 인상했다.
등급별 일당정액수가 차등제가 시행된지 3년이 된 시점에서 정신병원의 경영환경은 호전된 것일까?
C정신병원 L원장은 "일당정액수가 차등제는 병원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폐지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의료급여 수가가 인상되긴 했지만 의료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연봉이 폭등했고, 수입증가분이 환자 서비스 개선이 아니라 인건비로 다 들어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복지부는 수가를 올렸다고 생색을 내지만 우리 병원만 해도 몇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급여 정신과 수가의 가장 큰 문제는 건강보험에 비해 턱 없이 낮다는 점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입원환자 내원일당 진료비를 보면 건강보험이 6만 3655원인 반면 의료급여는 4만 672원이다. 의료급여 진료비가 건강보험의 64%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전체 입원환자의 80%가 의료급여환자인데 수가는 건강보험의 절반 정도밖에 주지 않는다"면서 "이는 국가에서 환자들에게 싼 약을 처방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헌법소원 감"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들은 급성기 때 좋은 약을 처방하면 조기에 치료가 가능한데 이런 수가 구조 때문에 만성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 간호사 연봉은 뛰는데 수가는 낮고, 여기에다 일당정액수가로 묶여있다보니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정신병원의 경영환경 역시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도 적정성평가가 의료인력 인건비 상승에 기름을 붓자 정신병원 일각에서는 평가를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신의료기관협회 홍상표 사무총장은 "전문의, 간호사 구인난이 심각해 인건비가 날로 치솟고 있고, 정신병원들은 경영난으로 모두 문을 닫기 일보직전에 직면해 있다"고 환기시켰다.
또 홍 사무총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급여 정신과 차등 정액수가제를 행위별수가로 바꾸고, 적정성평가도 수가를 개선한 이후 시행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의료급여 정신과 정액수가 차등제가 시행 3년만에 정신병원계의 저항에 부딛힌 것이다.
복지부는 현 행위별수가제에 기반한 입원 진료비 지불방식을 포괄수가제(DRG)로 개편할 방침이다.
하지만 적정수가를 보장하지 않는 진료비 지불방식은 환자 서비스 질을 악화시키고, 병원 경영난을 초래해 결국 저항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정신과 일당정액수가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