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OECD의 보고서를 '포괄수가제' 도입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어 의료계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보건복지부에 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같은 보고서를 인용해 DRG 도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강윤구)은 "OECD가 한국 의료의 질 검토 보고서를 발간, 심평원이 한국의료체계에서 의료의 질을 평가하고, 향상을 주도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하고 나섰다.
이에 따르면 보고서는 심평원의 향후 과제로 소규모 의원 및 개별 의료 제공자 평가로 영역을 확대하고, 의약품 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 확대, 가감지급사업의 공식적 평가, 의료정보의 적극적 활용 등을 권고 했다는 것.
문제는 이 보고서가 주로 정부의 정책 추진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가 권고한 DUR 확대와 가감지급 도입,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등은 이미 복지부와 심평원이 현재 추진하고 있거나 진행 중인 정책들이다.
의료계는 "이미 발간됐던 자료를 복지부와 심평원이 나눠먹기 식으로 유리한 정책들만 뽑아 홍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최근 메디칼타임즈 칼럼을 통해 "이 보고서를 위해 한국은 한화 1억 5000만원을 지원했다"면서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보고서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의 의견을 무시한 반쪽짜리"라고 평가절하했다.
적은 비용으로 희생을 감내한 의사들의 언급은 일절 없이 OECD 회원국에 비해 긴 입원환자 재원일수를 근거로 포괄수가제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과도한 서비스라는 한국보건의료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이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며 "막연히 그 원인을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는 한국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증가했지만 보건의료비 지출액 중 정부 부문의 지출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민이 보건의료에 대한 재원을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고 꼬집었다.
기존 자료를 재탕해 정책 추진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왜곡된 시각의 보건의료 현황에 대한 평가 자체의 모순에 의한 보고서는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보고서 발간에 관여한 정부 기관의 역할이 이들 보고서에 관여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앞서 의협은 "이번 OECD의 보고서는 의료 공급자의 입장은 단 한마디도 없다"며 "복지부가 추진한 주요 정책들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편향적 보고서"라고 못 박았다.
OECD의 일차의료체계 구축, 포괄적인 지불제도로의 개편 등을 권고하기에 앞서 정작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왜곡되고 기형적인 구조로 전락한 분석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은 "단기간 높은 의료서비스 수준을 갖출 수 있게 한 행위별수가제의 장점은 외면하고 의료의 질 하락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포괄수가제 도입을 왜 권고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