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경에 유다의 아들 오난이 질외 사정으로 피임을 시도한 기록이 있다.
그 후 과학의 발달과 인권 의식의 변화 등으로 많은 피임법이 개발되고 이용되어 왔다. 실제로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피임은 사회적, 종교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다.
근대 피임법의 시작은 1909년 독일에서 개발된 최초의 자궁내피임장치가 시초라 하겠다.
미국은 1965년에서야 기혼부부들에게 피임할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었고, 1972년에 미혼자들에게도 피임할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최근 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문제로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다.
응급피임법이란 계획되지 않은 성교가 있었거나, 콘돔을 사용하였는데 찢어졌다든지 하여 사용한 피임방법이 불확실하였을 때, 또는 강간 등 불시의 성교 후 임신을 방지하기 위한 응급 피임법이다.
성공률은 약 75% 정도로 확실한 기대를 할 수 없지만 말 그대로 응급상황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모든 의료행위나 약물사용에는 윤리적인 문제와 그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피임도 처해진 여건에 적합한 방법을 택할 때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낙태를 줄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바라지 않는 나쁜 결과들이 우리에게 짐으로 다가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응급 피임약을 쉽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미성년자들의 보호문제이다.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시 미성년자들이 응급 피임약을 구입하여 무분별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염려된다.
현재 미성년자에게 판매가 금지된 담배와 술을 청소년들이 너무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술, 담배의 접근도 막아내지 못하는 취약한 사회 구조를 가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 피임약의 일반 의약품 전환은 청소년들을 불건전한 성문화에 노출시킬 수 있다. 우리의 자녀들을 무책임하게 성 개방의 상황으로 내몰고 싶지 않다.
둘째, 남성의 책임은 낮아지고,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 있다. 성교 후 일방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응급 피임법을 강요할 수 있다.
남성은 피임에 대한 방관자로 행동하고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응급 피임약을 기대하고 콘돔 사용을 기피하면서 여성이 성병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지게 될 것이다.
셋째, 개인 성윤리 의식의 저하 현상과 맞물려 발생할 사회적 성윤리의 타락 현상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프리섹스가 광풍처럼 유행할 때 낙태와 미혼모 발생을 막자고 미혼자들에게 피임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나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시행된 이러한 정책은 성윤리의 타락과 미혼모의 폭발적인 증가라는 역풍을 가져왔다.
개인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져야 하지만, 자율성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회적 윤리 타락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넷째로 국가의 생명윤리의식의 저하문제이다. 응급 피임약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도록 하여 피임을 성공시키는 방법이다. 수정란 역시 생명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정란을 죽이도록 허용하는 정부의 생명윤리 의식저하 현상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아무런 대책도 사회적 합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급하게 일반의약품으로 전환 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제도적 안전장치 없이 응급 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사회 각층은 응급 피임약 사용 시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 가야 한다.
미숙한 정책결정은 미끄러운 경사 길처럼 개인과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짐으로 남을 수 있다.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성급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