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DRG)의 시행 이후 일선 개원가에서 자궁근종 환자를 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DRG로 묶인 수가 탓에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하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 병의원이 의뢰서를 써서 대학병원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11일 A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된 후 두세달이 지나면서부터 협력 병의원에서 고위험군 산모나 자궁근종 제거술이 필요한 환자를 전원시키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협력하고 있는 병의원 원장들을 잘 알고 있지만 포괄수가제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면서 "DRG 적용 이후 수가가 묶이면서 돈이 안 되는 자궁근종 환자를 무조건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근종 제거 수술 후 과다 출혈로 수혈이 1000cc 이상 필요한 환자도 있다"면서 "수혈 비용 등 치료비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받고 수술을 하느니 차라리 수술을 포기한다는 말도 종종 들린다"고 강조했다.
DRG 적용 전에는 제왕절개를 하며 자근근종 제거도 병행했지만 지금은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진료 외에는 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복강경에 쓰이는 트로카와 같은 치료재는 수입산이 10만원에 달한다"면서 "만일 환자를 위해 최소 침습으로 수술하다 실패하면 치료재 값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만 수술이 어렵다 싶으면 개복 수술을 권하는 의사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병의원은 환자를 전원시킬 수 있지만 대학병원은 피해갈 수도 없다"면서 "고위험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개원가에서도 충분히 수술이 가능한 자궁근종 환자를 대학병원에 보내는 것은 DRG의 폐해로 밖에는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사실상 DRG 제도 하에서는 수가가 묶여있기 때문에 비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비급여로 비용을 보전받을 수 없는 환자를 대학병원에 전원시키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복강경 수술은 회복도 빠르고 흉터도 크지 않아 환자들이 선호한다"면서 "하지만 포괄수가제 하에서 복강경이나 개복수술이나 비슷한 수가를 준다고 하면 누가 난이도가 높고 소모품이 많이 들어가는 복강경을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2008년부터 포괄수가제에 참여한 S산부인과 원장은 "실제로 포괄수가제에 참여하면서 의료 질 저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며 "과거에는 환자를 위해 제왕절개를 하면서 자근근종 제거나 난소 물혹 제거를 했지만 이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포괄수가제 이후 수가에 맞는 획일적인 진료 이상은 하지 않게 됐다는 것.
그는 "특히 영양제나 유착 방지제가 필요한 경우에도 이를 권유하다가는 민원이 생기거나 진료비가 환수될 수 있어 더욱 꺼리게 됐다"면서 "어렵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의뢰서를 써주는 형편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