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수술 직후 사망하자 8년간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린 대학병원이 있다. 유족 측은 재심소송이 각하되자 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해 지루한 공방전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2003년 8월 K대학병원 수술방. 최모 교수는 담관암이 점막을 따라 담낭 및 간문부, 좌측 간내담관으로 진행된 김모 환자의 간과 췌장을 함께 절제하는 수술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맥을 절제하고 단단문합방식으로 봉합하는 과정에서, 췌장 및 비장 절제수술 도중 연달아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환자는 출혈로 인해 응고인자가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고, 몸 안의 작은 혈관에서 출혈이 계속되는 응고부전으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자 유족들은 K대학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K대학병원이 수술 전 췌장과 간으로 암이 전이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로 조직검사를 하거나 수술전 복강경 검사를 해야 하지만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또 수술 도중 환자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췌장과 간으로 암이 전이 됐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했고, 뒤늦게 췌장전절제술과 비장절제술로 수술방법을 변경한 과실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환자가 제4병기의 말기 암환자여서 수술을 해서는 안되지만 K대병원이 수술전 환자의 적응증을 잘못 판단해 수술한 과실이 있고, 최 교수가 수술 과정에서 혈관을 건드려 과다출혈이 발생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법은 2005년 10월 K대학병원에 과실이 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수술 전에 적절한 검사를 하지 않았다거나 수술 적응증이 없었다거나, 시술상 과실, 설명의무 위반 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유족은 1심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항소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역시 수술 도중 수술계획을 변경할 수 있고, 병기가 제2단계에 해당해 절제수술이 가능했으며, 간과 췌장을 함께 절제한 것도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어서 환자 사망에 대한 K대학병원의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수술 도중 다량의 출혈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 교수가 수술 미숙으로 혈관을 잘못 건드렸다거나 수술후 출혈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판결에 대해 원고 측은 상고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2006년 10월 12일 그대로 확정됐다.
그런데 원고 측이 2011년 10월 1억여원의 손배배상을 요구하는 재심을 청구하고 나서면서 또다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원고 측은 K대병원이 수술전 병기가 말기라고 했다가 소송 과정에서 2기라고 번복했고, 췌장절제술과 비장절제술로 수술계획을 변경한 것은 오진과 안인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심지어 원고 측은 "병원이 적절한 조치를 했다는 대한의사협회의 허위 감정촉탁회신에 근거해 항소심 판결이 병원에 귀책사유가 없다고 한 것은 판단 누락"이라고 환기시켰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재심청구를 각하했다.
원고가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아 2006년 10월 그대로 확정됐는데, 2011년 10월 뒤늦게 재심 소송을 제기한 것은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원고가 재심청구에서 언급하고 있는 진료기록과 부검감정서는 이미 항소심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라면서 "2011년 10월 비로소 이를 알았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 자료가 없어 이 사건 재심의 소는 부적합하다"고 못 박았다.
원고 측은 재심청구가 각하됐지만 2012년 12월 말 대법원에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