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남원에 있는 서남의대를 직접 방문한 느낌은 "을씨년스러울거다"라는 혹자의 사전예고 그대로였다.
지난해 기자가 광주에 있는 남광병원을 현장취재 갔을 때의 느낌과 이렇게 같을 수가 없었다.
대학 초입에는 '서남대 사태 부른 사학재단 사퇴하라!', '서남대학교!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라는 상반된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같은 현수막은 남원 시내 곳곳에도 붙어있었다. 남원시약사회, 남원시한약협회 등 시민단체들이 나선 것이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오전 9시. 서남의대 행정 사무실에만 불이 들어와 있을 뿐 의대는 고요했다.
때마침 졸업식이 예정돼 있어 꽃을 파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꽃을 늘어놓고 있었다. 학생도, 교수도 아직까진 보이지 않았다.
대학 관계자는 "학생 대부분이 타 지역 학생이다 보니 방학 때는 학교에 남아있지 않는다. 교수들도 광주에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서 출근시간이 늦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의대 5층 건물을 한층씩 한층씩 올라갔다.
1층을 제외한 모든 층은 사람이 없어 불이 꺼져 있었다.
1층과 학생휴게실 등에 배치된 게시판은 각종 학술대회 정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대신, 서남의대가 국시 합격률이 높다는 광고 전단지가 반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2층부터는 '교수 연구 구역이므로 관계자외 출입을 금함'이라는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하지만 연구를 하고 있는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2층에 있는 학장실과 교학과장실은 추운날씨 탓인지 휑하니 냉기가 흘렀다. 학장실에는 팻말도 없었다. 교학과장실은 너무 어두워 손전등이 필요할 정도였다.
"부실대학은 교수 연구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고 했던 한 의대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의대 교수는 연구와 교육 때문에 방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수연구실과 실험을 위한 수업 공간이 붙어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4층 동물실험실에는 동물을 가둬놓을 수 있는 우리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인 휴게실, 동아리방, 도서관은 방학 동안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아리방은 발을 디딜 수가 없을 정도로 물건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휴게실에 있는 사물함은 칸칸히 모두 열려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학생들이 모습을 보였다. 기초의학 교수 5명도 출근했다.
이날은 선배와 후배들이 골학 공부를 위해 4박 5일 일정으로 합숙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를 찾았다.
한 서남의대 학생은 최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당장 재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그럼 학생들은 1년을 그대로 날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사장 측에서는 이 문제를 끌려고 마음 먹으면 7년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서남의대에서 받은 학점을 모두 인정해주고 바로 옮기지 않는 이상 솔직히 졸업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남대의 새로운 시작, 애정갖고 지켜봐 달라"
오전 11시. 체육관에서 졸업식이 시작됐다. 조용하던 캠퍼스도 졸업을 하는 학생들과 가족들로 잠시지만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올해 의대 졸업생은 모두 45명. 대한의학회, 대한의사협회, 전라북도의사회에서 3명의 학생에게 표창장도 수여했다.
하지만 이들 졸업생은 현재 학교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말하기는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총장은 축사를 통해 일련의 사태로 교수들이 나서서 서남대를 바꾸려는 노력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표현하며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잠시. 졸업식이 끝난 후 기념촬영을 끝낸 사람들은 하나둘씩 점심식사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서남대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