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는 2009년도 수가 인상 요인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이같은 수가협상 지침을 공단 수가협상팀에 전달했다. 수가를 동결하거나 인하하라는 의미다.
이 같은 방침은 공단의 환산지수(상대가치점수 당 단가)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2009년 재정운영위 소위는 환산지수 연구 결과대로 2010년 의원, 병원, 약국, 한방, 치과 수가를 2~3% 인하하라고 공단에 요구했다.
그러나 공단 재정운영위는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 단 한번도 왜 수가를 인하해야 하는지 근거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의 보험료로 적정 환산지수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개로 일관하면서 수가를 올리면 물가 안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매년 평균 2%대 수가 인상을 승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과거 공단 재정운영위 소위에 참여했던 모 인사는 "나도 어떤 근거로 수가 협상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어쩌면 '그냥 내키는대로' 수가 인상폭을 정한 것이다.
무대뽀 수가협상은 공급자단체인 의협, 병협, 한의협, 치협, 약사회도 마찬가지다.
경영 악화, 저수가 등으로 10% 이상 수가 인상 요인이 있으며, 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외투쟁에 나설 것처럼 공언해 왔지만 막상 협상장에 들어서면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3%도 안되는 공단 협상안에 도장을 찍고서는 다른 단체들보다 0.1% 더 높게 받은 게 대단한 성과인 양 포장하기 바빴다.
의사들은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다보니 수가협상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 의약계 역시 매년 수천만원짜리 연구용역 보고서를 들이대며 수가협상안을 제시하지만 '제 입맛'에 맞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공단 협상용이라기보다 '면피용'이라는 의미다.
모 의약계 단체는 수가를 10% 인상해야 한다는 연구보고서를 공단에 들이밀었다가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몇일 뒤 7%로 낮춰서 가져오기도 했다.
돈 줄을 쥐고 있는 공단도, 더 많은 돈보따리를 따내야 하는 의약계도 게임의 룰도 없이 '그냥 내키는대로'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공급자단체들은 수가협상에 들어가기 직전 공단 재정운영위를 향해 매년 똑같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내년도 평균 수가인상폭을 공개한 후 협상을 하자는 요구다.
다시 말해 병의원, 약국에 추가로 줄 건강보험 재정이 1조원인지, 아니면 수가를 얼마나 인하할 것인지부터 먼저 밝히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공단 재정운영위는 공급자단체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안을 제시하며 사실상 거부해 왔다.
예들 들면 병원, 약국 등의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지난 7일 공단 재정운영위는 공급자단체 대표들과 만나 "가입자의 유일한 카드인 수가인상폭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총액계약제 도입 등 제도 개선에 대해 함께 생각한다면 공개할 수도 있다"고 반격했다.
공단은 공급자단체들과 개별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내년도 평균 수가인상률에 대해 우선 협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총액계약제 도입과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카드를 꺼내 이런 요구를 번번이 묵살시켜 왔다.
공단 재정운영위 입장에서 보면 '그냥 내키는대로' 수가 조정안을 마련했다고 자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런 카드로 맞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공단의 협상 전략은 공급자단체를 분열시키고, 수가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내년도 평균 수가인상률을 모르는 상태에서 협상을 하다보니 공급자단체들은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다른 단체보다 0.1%라도 더 받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었다.
의료계 한 인사는 "공단의 협상 전략에 공급자단체들이 놀아나고 있다"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늘려야 제 몫이 커지지만 서로 자기 것만 챙기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의원, 병원, 한방, 치과, 약국 유형별 수가인상 근거는 무엇일까?
2013년도 수가인상률을 보면 병원이 2.2%, 의원이 2.4%, 치과가 2.7%, 한방이 2.7%, 약국이 2.9%지만 왜 이런 인상률 차이가 발생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공단과 의약계단체가 유형별 수가협상을 왜 하는지조차 망각한 채 '그냥' 밀고 당기다가 적당한 선에서 도장을 찍어왔다는 이야기다.
2007년 이전 단일수가가 적용될 당시 2008년 수가인상률이 2%였다고 치자.
하지만 실제 재정 증가분을 보면 병원이 5%, 의원이 3%로 차이가 발생한다. 병원에 실제 재정이 더 투입되다보니 수입 불균형이 발생했고, 수가를 몇푼 올려봐야 부익부 빈익빈현상만 초래했다.
그러자 공단과 의약계는 유형별 수가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실제 각 유형별 행위료 증감 폭을 수가에 반영해 형평성을 맞추자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협상 결과는 딴판이었다.
2007년도 대비 2008년도 각 유형별 행위료 증감을 보면 병원이 12.8%, 의원이 1.8%, 약국이 1.7%, 한방이 1.6%, 치과가 0.32% 순이었다.
그렇다면 2009년도 유형별 수가인상률은 이를 반영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09년도 각 유형별 수가인상률을 보면 재정증가율 4위인 한방이 3.7%로 가장 높고, 정착 수입이 가장 적게 증가한 치과는 3.5% 인상에 그치며 한방에 밀렸다.
2010년 역시 행위료 증감이 2.48% 증가해 5개 유형중 꼴치였던 약국은 수가인상률이 가장 높아야 하지만 3위인 1.9%에 그쳤다.
2011년 대비 2012년 행위료 재정 투입분을 보면 1위가 병원(10.9%), 2위가 한방(7.3%), 3위가 의원(5.4%), 4위가 약국(4.6%), 5위가 치과(4.3%)였다.
반면 2013년도 수가인상률을 보면 1등을 해야 할 치과는 2.7%로 2위로 밀렸고, 2등을 해야 할 약국이 2.9%로 1위로 올라섰다. 의원 역시 한방 2.7%보다 높은 수가를 받아야 하지만 2.2%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의료기관 입장에서 2.2%든 2.9%든 저수가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런 상황이 매년 반복되는 것은 '수퍼 갑'인 공단에 잘 보여야 그나마 다른 단체보다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된 결과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급자단체들이 힘을 합쳐 공단을 향해 더 많은 재정 보따리를 풀라고 요구하지 못하고, 돈 보따리에 얼마가 들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알아서 뜯어먹으라고 강요하는 공단. 그야말로 야생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평수 연구위원은 "공단과 의약계는 근거와 룰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게 없었다"면서 "그러니 공단 재정운영위가 마음 먹은대로 협상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
본보는 지난 5.20~5.22 기간 중 '수가협상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하의 3편의 기획 기사에서, 건강보험공단의 협상 근거자료 미공개, 근거 없는 협상 가이드라인, '13년 수가인상률 순위 오류, 의협과 협상에서 부대조건으로 총액계약제, 성분명 처방 시행 강요, 건정심에서 공단과 수가협상이 결렬된 단체에 대해서 항상 페널티 적용 및 공단의 행태를 남양유업보다 더한 갑을 관계에 비유한 내용 등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위 보도는 수가협상의 당사자인 공급자단체 측의 표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정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본보는 건강보험공단 측으로부터 다음 사항을 확인하였기에 아래와 같이 정정보도합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매년 수가협상은 외부 수가전문가의 연구용역 결과와 재정상황, 급여비 변화 및 보장성 확대 등을 고려하여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단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협상이 끝난 후 연구결과를 공급자 측에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가협상 결렬 단체의 경우도 총 9회 중 단 1회만 페널티를 적용해 공단 결렬수치보다 낮게 건정심에서 결정했고 오히려 높은 수치를 받은 사례가 다수였던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한편, 공단은 "부대합의는 기본조정률 이외 상호 공감대 하에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사항일 뿐이라며 공단이 '총액계약제'나 '성분명처방' 시행을 수가인상률과 결부하여 요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