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건강보험공단은 의협과의 2013년도 수가협상에서 2.4% 인상안을 최종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공단은 수가협상 부대조건으로 총액계약제, 성분명처방 시행에 합의할 것을 의협에 요구하고 나섰다.
그것도 협상 시한을 3일 남겨놓고 의협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대조건 카드를 내밀었다.
공단이 의협에 총액계약제, 성분명처방 합의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협상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 없다.
당시 의협은 왜 2.4% 인상안을 제시했는지 근거를 대라고 공단에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공단은 의협이 두가지 부대조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공단과 의약계간 수가협상은 '갑'과 '을'이 아닌 수평적 관계다.
그러나 공단이 마치 '수퍼 갑'인양 협상에 나서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공단이 제시한 수가협상안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관행적으로 페널티를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당시 의협은 "공단은 2.4% 인상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공단의 자의적인 제안과 일관성 없는 협상이 결렬의 원인이며, 페널티 부여가 불가피하다면 그 사유를 밝히라"고 건정심 위원들을 압박했다.
더 황당한 것은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의협에 대해 페널티를 요구한 게 한의협과 약사회였다는 점이다.
현재의 수가협상 구조는 의협과 병협, 치협, 한의협, 약사회가 한정된 재정을 나눠먹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일단 수가협상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동업자가 아닌 경쟁자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의협은 "건보공단의 일방적 의견을 수용하면 수가협상에 성실히 응한 것이고, 일방적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수가협상에 불성실하게 응한 거냐"고 따졌다.
또 의협은 "약사회가 건정심에서 보여준 추태는 노예 신분이면서 권리를 부르짖는 다른 노예를 학대함으로써 주인에게 충성하는 노예 관리인을 떠올리게 한다"고 조롱했다.
2011년 병협은 공단과 2012년도 수가협상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경실련, 한국노총, 민주노총, 농민단체 등 8개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는 병협에 패널티를 부과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병원에 대한 공단의 최종 협상안이 1.3%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건정심에서 패널티를 적용할 것을 부대 결의했다"고 환기시켰다.
'을'에 불과한 병협이 감히 '수퍼 갑'인 공단의 협상안을 거절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괘씸죄'를 적용, 건정심에서 수가를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상식적인 행태는 병협의 대정부 투쟁으로 이어져 전국 병원인들은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궐기대회로 맞섰다.
병협은 "공단이 일방적인 수가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무조건 따르라고 공급자들을 압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협상이 결렬되면 페널티를 주겠다고 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건정심 페널티가 겁나 공단 협상안에 도장을 찍는 사례도 속출했다.
병협은 2010년 10월 공단이 제시한 1% 인상안을 받아들였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건정심에 갈 경우 더 낮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의협도 2012년도 수가협상에서 공단과 2.9%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처음으로 공단과 합의한 것이었다.
의협은 "매년 수가협상 결렬로 인해 그간 회원들이 입은 누적피해가 너무 크고, 이번에도 건정심으로 가서 페널티를 받으면 회원들의 경영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고심 끝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유형별 수가계약 이후 처음으로 협상이 타결됐지만 수가결정방식 개선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면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계약체결구조를 이대로 두고는 비현실적인 수가를 개선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 건정심의 횡포는 국정감사 도마에까지 올랐다.
2010년 10월 정하균 의원은 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 매년 공단과 의약단체간 수가협상이 결렬되는 것은 의약단체에 페널티를 주는 관행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정 의원은 "지난 10년간 수가협상에서 단 한번만 공단과 계약이 체결됐을 뿐 나머지 9번은 건정심에서 결정됐다"면서 "이는 공단이 수가계약을 하지 않고 건정심에 넘기면 페널티로 수가인상률을 낮추는 관행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이평수 연구위원은 "페널티는 무리한 요구로 협상 결렬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공급자단체가 공단보다 높은 협상안을 제시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수가협상의 규칙을 어기거나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페널티를 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공급자만 불이익을 받았을 뿐 공단은 단 한번도 없다"면서 "이건 쌍방계약이 아니라 남양유업보다 더한 갑과 을의 관계"라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
본보는 지난 5.20~5.22 기간 중 '수가협상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하의 3편의 기획 기사에서, 건강보험공단의 협상 근거자료 미공개, 근거 없는 협상 가이드라인, '13년 수가인상률 순위 오류, 의협과 협상에서 부대조건으로 총액계약제, 성분명 처방 시행 강요, 건정심에서 공단과 수가협상이 결렬된 단체에 대해서 항상 페널티 적용 및 공단의 행태를 남양유업보다 더한 갑을 관계에 비유한 내용 등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위 보도는 수가협상의 당사자인 공급자단체 측의 표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정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본보는 건강보험공단 측으로부터 다음 사항을 확인하였기에 아래와 같이 정정보도합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매년 수가협상은 외부 수가전문가의 연구용역 결과와 재정상황, 급여비 변화 및 보장성 확대 등을 고려하여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단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협상이 끝난 후 연구결과를 공급자 측에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가협상 결렬 단체의 경우도 총 9회 중 단 1회만 페널티를 적용해 공단 결렬수치보다 낮게 건정심에서 결정했고 오히려 높은 수치를 받은 사례가 다수였던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한편, 공단은 "부대합의는 기본조정률 이외 상호 공감대 하에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사항일 뿐이라며 공단이 '총액계약제'나 '성분명처방' 시행을 수가인상률과 결부하여 요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