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사 PM은 요즘 '더럽고 치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국적사와 의약품 품목 제휴를 하면 어느 정도 독소 조항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마케팅 비용 전담은 물론 발품 영업까지 국내사가 안하는 것이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종이다. 제약업계판 남양유업과 다름 없다."
올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외 제약사 간 불공정 의약품 거래 계약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것인데 여기서 '갑'은 사실상 다국적사를 지칭했다.
국내외 제약사 간 품목제휴시 불공정 계약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공정위의 조치였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공정위의 표준계약서 발표 후 변한 것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여전히 '독소조항이 존재한다"고 울부짓고 있다.
"처방 잘 나오는 병원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그간 알려진 국내-다국적사 간에 독소조항은 많다.
▲최소판매수량 미달시 패널티 ▲계약 종료 후 판권 회수시 미보상 ▲경쟁품 판매 금지 ▲계약 갱신시 종료, 해지는 다국적사 결정 ▲계약 종료 후 향후 몇 년간 동일 성분 제조 금지 ▲판촉 비용 국내사 부담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최근에는 어떤 불공정 계약이 이뤄지고 있을까.
국내 A사 PM은 '거래처를 선정할 때 발전 가능성이 있는 병의원은 다국적사가 먼저 선점해 계약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한마디로 처방이 잘 나올 것 같은 신규 거래처 등은 자기네들이 가져가겠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는 어렵고 까다로운 병의원을 준다. 한마디로 맨 땅에 헤딩하라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렇듯 영업하기 어려운 곳은 국내사에게 넘겨주지만 사정은 봐주지 않는다. 실적이 목표에 미달되면 각종 패널티가 돌아온다. 다국적사 기대치에 맞추려면 무리한 영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국내 B사 PM은 품목 제휴를 할 때 또 다른 다국적사의 횡포로 '수수료 책정시 장기보다는 단기 계약을 선호한다'는 조항을 꼽았다.
이 PM은 "다국적사는 짧은 주기로 국내사 영업 실적을 점검한다. 이후 실적에 따라 수수료가 조정되는데 당연히 못 팔면 수수료가 인하된다. 다국적사가 수수료 책정 계약을 맺을 때 장기보다 단기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케팅 비용은 대부분 국내사가 부담한다. 결국 100억원 팔고 다국적사에 60~70% 떼어주면 남는 것은 10억원 안팎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겪"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다국적-국내사 간 윈-윈하는 관계도 적지 않다.
대표 사례로 한미약품을 꼽을 수 있는데, 이 회사는 국내사로는 드물게 자사 고혈압복합제 '아모잘탄(오잘탄+암로디핀)'을 다국적사 MSD와 공동 판매하고 있다.
국내 영업보다는 MSD를 통한 해외 진출을 노린 포석이었는데 기대한 대로 '아모잘탄'은 현재 수십개국에 수출이 됐거나 수출이 임박한 상태다.
업계는 이 사례를 국내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