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DRG제도 시행 한달 째. 병원계는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31일 병원계에 따르면 아직 공식적으로 문제점을 거론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수면 아래에선 의료진은 물론 각 병원 행정직 직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일부 의료진, 수술 패턴 바꿨다
특히 제도 시행 직전까지 강하게 반대입장을 밝혔던 산부인과 의료진들은 당초 우려했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어두운 표정이다.
실제로 일부 의료진들은 DRG 시행 이후 진료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가령 과거 행위별수가를 적용할 땐 요실금 증상을 호소하는 자궁질환자의 경우 동시에 수술해 왔다. 덕분에 환자는 수면마취한 김에 2가지 이상의 질환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DRG 시행 한 달째에 접어든 현재 이미 중복 질환에 대한 수술을 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
A대학병원 산부인과 김모 교수는 "지금까지는 요실금환자의 자궁질환 수술을 동시에 실시했지만 DRG로 전환하면서부터는 따로 수술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각각 행위별로 청구를 하면 간단했지만, DRG수가로 묶여있는 현재로서는 1개 질환 수술에 대한 수가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이비인후과, 외과 등 DRG를 실시하는 7개 질환 관련 전문과 의료진들은 거듭 우려했던 부분.
김 교수는 "앞서 우려했던 문제가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면서 "1년 정도 지나면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봇수술도 DRG에 포함 소식에 의료진들 수술 중단
이와 함께 DRG는 신의료기술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산부인과학회는 복강경 수술을 거부하겠다면서 DRG 시행에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학회가 우려했던 것도 복강경 수술은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관련 부속품 및 치료재료도 하루가 다르게 뛰어난 제품이 쏟아지는데 이를 DRG라는 제도의 틀에 끼워 넣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일부 자궁근종을 로봇으로 수술하는 대학병원들은 수술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자궁근종은 DRG를 실시하는 7개 질환 중 하나로 로봇수술을 실시해도 행위별청구를 할 수 없게 됐다. 심평원은 자궁근종 질환에 대한 로봇수술 또한 DRG에 포함되며 요양급여비용 열외군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초 로봇수술은 비급여 항목으로 별개의 건이라고 생각했던 의료진은 뜻밖의 소식에 난감한 표정이다.
B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8월달 자궁근종 로봇수술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는 "로봇수술은 DRG에 포함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7월 중순에 갑자기 자궁근종 등 7개 질환은 로봇수술도 DRG에 포함된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스러웠다"면서 "결국 환자의 진료선택권 침해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환자를 로봇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근종의 위치가 안좋거나 부위가 커서 수술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울 때 로봇수술을 통해 치료효과를 높여왔는데 앞으로는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의사 입장에선 로봇으로 하면 골반 깊은 부위에 원하는 각도로 접근해서 정교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고, 환자 입장에선 발전된 의학기술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당장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은 병원에서도 DRG 제도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은 여전하다.
C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기존대로 진료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 걱정"이라고 했고, 다른 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아직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1년후 혹은 3년후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아직은 각 병원별로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조만간 모여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