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한의계의 용어 전쟁이 서막을 올릴 조짐이다.
최근 한의사협회가 한의사를 '무당' '사기꾼' 등의 용어로 표현한 모 수련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가운데 의료계도 자신을 의사로 지칭하는 경우나 양의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한의사들을 찾아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25일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성명서를 내고 "자신을 의사라고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한의사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모두 형사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먼저 전의총은 "한의사가 자신을 의사라고 광고나 홍보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면서 "한의사들의 이런 몰지각한 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적발된 한의사들을 개별적으로 모두 형사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전의총까지 고발전에 나서게 된 것은 일부 한의사들이 개인 블로그, 자서전뿐만 아니라 TV, 인터넷 광고에서도 자신들을 '의사'라고 지칭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의총은 "게다가 한의사들이 의사를 양의사라고 폄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들에게 양의사가 실제 존재해며 의사, 한의사가 모두 의사에 속하는 직종이라는 해괴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의료법 제2조 제1,2항을 보면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라고 의사, 한의사를 분명히 다른 직종으로 분류를 해놓았다.
또 직무 영역도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확실한 구분도 돼 있기 때문에 의사와 한의사를 뭉뚱그려 '의사'로 표현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것.
전의총은 "한의학이 위기라는 사실이 이런 불법 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가 없다"면서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으면 다시 의과대학에 입학해 진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면허증을 발급받고 당당하게 의료행위를 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전의총은 이어 "양방의사, 양의학이란 용어는 의료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날조된 용어"라면서 "의료법에는 의학과 한의학, 의사와 한의사라는 용어만 존재하기 때문에 날조된 비상식적인 용어 사용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한의사들은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의계 관계자는 "의료법상 의료인의 규정에 분명 한의사가 포함돼 있다"면서 "의료인에 해당하는 한의사에게 '의사'라는 표현을 쓰지말라는 것은 황당하고 수준 이하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의사들이야 말로 자신들을 의료계로 표현하며 같은 의료인에 속하는 한의사들을 한의계로 폄훼하지 않았냐"면서 "상대방의 학문을 비하하는 일을 중단하고 상호 건설적인 논의를 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양의사라는 표현 역시 한의사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말"이라면서 "그 뜻도 서양 의술을 베푸는 의사라는 의미로서 폄훼의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용어 사용의 정당성을 두고 전의총의 재반박도 이어졌다.
전의총 관계자는 "양의(洋醫)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서양의 의술이나 서양의 의술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의돼 있다"면서 "개화기 당시 현대의학이 없었을 때 기존 민간의학과 대비되던 개념으로 사용되던 단어가 바로 양의"라고 반박했다.
그는 "현재는 현대 의학을 하는 사람들을 의사로 정의하기 때문에 한의사가 자신들을 의사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치과의사가 자신을 의사로 표현하지 않듯, 한의사도 자신들을 의사로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한의학의 가치를 옹호하던 한의사들이 자신을 의사로 표현하는 것은 한의학적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면서 "지금 시점 이후부터 의사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는 분명한 법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