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병든 나뭇가지를 잘라내는데만 집착하여 칼을 써온 좀팽이 칼잡이에서 벗어나고 싶다."
서울
관악이비인후과 최종욱 원장은 30년간 칼잡이로서 수술을 해오다가 어느날 한 사건을 만나고 철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깨달음이다.
그의 고백을 담은 '
칼'이라는 글은 최근 의사수필 동인회
박달회(회장 유형준)가 발간한 '
박달나이 마흔'에 실렸다.
최종욱 원장은 #두경부외과 의사로서 수술용 메스 중에서 가장 작은
15번 메스를 쓴다.
그는 후학들에게 "두경부외과 의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칼을 사용하지만, 가장 큰 정성을 담아 모든 환자들을 감동시키고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 자신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갑상선암 수술을 끝내고 진료실로 이동하던 최 원장에게 느닷없이 한 젊은 청년이 뛰어들었다.
이 청년은 최 원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온 몸을 발로 차고 '
광란의 폭행'을 했다. 제크나이프로 위협하며 소리도 질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최 원장의 얼굴은 퉁퉁부어 멍들어 있었고, 오른쪽 눈썹 부위가 찢어져 피가 흘렀으며, 좌측 어금니 세 개가 흔들거려 결국 뽑았다.
청년은 수술을 맡은 최 원장이 너무 아프게 했고, 기대만큼 병도 좋아지지 않아서 폭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사건은 최 원장에게 전환점이 됐다.
그는 "30년간 오만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술했지만 처음 겪는 봉변이었다. 항상 백인삼성의 마음과 정신일도하사불성의 집념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했는데 뭔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환자의 환부만 수술하는 좀팽이 노릇만하고 삼십년이 넘도록 그들의 아픈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진정한 '신검'을 쓸 줄 아는 수준까지는 못됐다는 것.
최 원장은 어떤 칼잡이보다
한석봉 어머니를 가장 존경한다고 책에 적었다.
부엌칼 하나로 떡을 썰어 자식을 훌륭하게 공부시키고, 집안을 보살피고, 마을사람들에게까지 떡을 나눠주며 배려했기 때문이다.
최종욱 원장은 "삼십년짜리 15번파 칼잡이는 평생을 부엌칼로 떡을 썰어 온 한석봉 어머니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신검이 아닌 15번 칼로도 병소는 물론 마음까지 고칠 때 비로소 진정한 칼잡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