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공단, 진료비 총량 관리 방향
한 해 동안 할 수 있는 행위량이 정해져 있다면? 진료량 변화율을 고려해 수가 인상률을 결정한다면?
건강보험공단이 앞으로
총진료비 지출 관리에 나서겠다는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국회에 보고했다.
가격과 진료량을 동시에 통제하겠다는 것에서 방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상 '
총액계약제'와 다를 바 없다.
김종대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진료비 총량 관리가 가능한 제도 개선을 위해 공급자단체와 공동연구 및 연중 대화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해마다 협상을 통해 이뤄지는 환산지수(수가) 계약만으로는 총진료비 지출 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012년 환산지수를 2.2% 인상했지만 총 진료비 중 행위료는 6.5% 증가했다.
진료비 증가율은 2011년부터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전만해도 해마다 10% 이상씩 증가해 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진료량 증가는 행위별 수가제에서 나타나는 한계점이다. 진료비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방향성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측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쪽으로 진료비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방향성은 이미 건보공단이 추진했던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 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2013년도와 2014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를 맡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박사팀은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진료비 총량 관리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13년도 연구에서는 현재 수가계약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책으로 '
진료비 목표관리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2014년도 연구에서는 조금 더 구체화한 산식까지도 함께 선보였다.
그는 "진료비 목표관리제는 환산지수 연구 보고서에서 처음 제시한 말로, 의료계에서 말하는
총액계약제보다는 조금 더 소프트한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신현웅 박사에 따르면 '목표 진료비 관리제'는 진료비 가격과 진료량을 통합해 총량적인 개념의 수가계약을 하는 것이다.
방식은 수가계약 시 보험자와 공급자가 다음연도 목표진료비를 합의하고, 이를 기준으로 다다음연도 환산지수를 결정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다음연도 실제진료비가 목표진료비보다 높으면 수가를 인하하고, 실제진료비가 목표진료비 보다 낮으면 수가를 인상하는 구조다.
신 박사는 2014년도 연구에서 '예측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환산지수 결정을 위한 산식을 제시했다. 환산지수 계산 때 쓰이는 SGR 모형을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산식을 쉽게 풀이하면 공급자와 가입자가 협상을 통해 '인정 가능한 인상률'에 진료량 증감률을 더해 수가 인상률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인정 가능한 인상률은 공급자와 공단이 각각 수가에 반영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수치화해서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공급자는 인건비, 관리비, 재료비 등을 생각할 수 있고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재정과 보험료 인상률, 보장성 확대 등이 잇겠다.
여기에 신 박사팀은 '유형별 진료비 차등 증감률'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유형별로 목표진료비 증가율을 정한 뒤 실제진료비 증가율과 비교해서 나타난 차이를 수가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방법 다른 사실상 '총액계약제'…의료계 "크기가 걱정"
진료비 총량 관리를 위한 대안으로 가장 먼저 손 꼽히는 '총액계약제' 도입은 매년 수가협상 부대조건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그러나 건보공단 측은 진료비 총량 관리가 곧 '총액계약제'를 하겠다고 확대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신현웅 박사도 "총액계약제는 말 그대로 총액을 정해놓고 그 금액만큼만 주고 안주는 하드한 개념이다. 목표진료비 관리제는 그 해 진료비를 다음년도 진료비 수가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총액계약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대만인데, 정부와 공급자가 합의한 산식으로 총액이 자동 계산 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에는 '
합의,
협상'의 개념이 조금 더 강화된 것.
하지만 가격과 진료량을 동시에 통제하겠다는 것에서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결국에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공급자단체는 진료비 총량을 관리한다는 그 자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목표진료비에 대한 공급자와 보험자의 생각차 때문이다.
결국 목표진료비의 '크기'가 걱정인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예측가능한 목표진료비를 늘려가는 속도가 자연증가율보다 낮으면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까지는 진료비 증가율이 워낙 컸기 때문에 총량을 정부가 관리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진료비 총량 관리 공급자-보험자 간극 "대화 필요"
전문가들은 진료비를 정부가 통제하는 게 의료계에 무조건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진료비 총량을 관리하면 의사들이 지금처럼 토, 일을 기를 써가며 진료할 이유가 없어진다. 컷트라인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도 총액계약제를 하고 나니 의사들은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하는 만큼 돈을 벌어가지만, 총액계약제는 자기가 갖고 갈 게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서로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방법론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의협 관계자는 "현재 의료계는 정부 방향 자체에 대해서도 동의를 안하고 있다. 예측가능한 진료비 관리를 위해서 어떤 요소를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공급의 통제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공급을 무방비 상태로 둔 결과 빅5가 너무 커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급을 통제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환자를 늘렸다. 지금부터라도 공급과 이용 통제를 하면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현웅 박사도 "진료비 총량 관리를 총액계약제 방식으로 가는 중간 과정이라는 것은 오해"라면서 "현실적으로 산식에 들어갈 요소들을 어떻게 반영할지 간극을 좁혀나가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