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24시간 동안 응급실을 지킨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법정 증언대에 섰다. 응급환자를 돌보고 있는 자신을 폭행한 환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호소였다.
그후 지난달 28일 그 환자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전공의가 제시한 진단서와 CCTV는 그의 항변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복지이사. 전공의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권익을 보장하는 파수꾼의 자리다.
하지만 이 사건을 이끈 서곤 전공의(중앙대병원 응급의학과)가 이처럼 혈혈단신으로 응급실 폭력에 맞선 것은 그가 복지이사를 맡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복지이사를 자청해 집행부에 합류했다.
서 전공의는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실은 내가 계속해서 해왔던 일 중 하나일 뿐"이라며 "우선 나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조금씩 변화하지 않겠냐는 소신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고 운을 띄웠다.
실제로 그는 중앙대병원에서 경찰과 가장 가까운 전공의로 불린다. 폭력이나 주사 등으로 응급진료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그는 망설임없이 경찰을 부른다.
지난해 급성 흉통으로 입원한 환자를 신고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급성 흉통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계속해서 검사를 거부하고, 처방만 요구하며 퇴원을 서둘렀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그는 위험해 보이는 그 환자를 그냥 퇴원시킬 수 없었다. 검사를 두고 계속해서 실랑이가 벌어지자 급기야 그 환자는 서 전공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사가 급하다고 생각한 서 전공의는 이를 우선 참고 검사를 진행했다. 이후 처치를 마친 그는 환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현행범으로 연행시켰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단호하게 응급실 난동에 대처하는 이유는 뭘까.
서 전공의는 "응급실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당장 1분, 1초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응급실에서 진료를 방해하는 것은 모두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사람이 죽어야 응급 진료 방해가 되나요? 응급실은 다음 기회가 없는 곳이죠. 내가 한번 더 못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을 위해 써야할 시간과 감정을 왜 술 취한 사람에게 써야 하나요."
이러 이유로 그에게 현재 응급실의 여건은 아쉬울 따름이다. 수없는 폭행과 폭언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너무나 더디기 때문이다.
서 전공의는 "법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보루 아니냐"며 "응급실 의사들이 월급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환자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방어막만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 왜 이리 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응급실은 삶에 있어 최악의 순간에 오게 되는 곳"이라며 "이곳에서 인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가 대전협 복지이사를 자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공의로서 전공의가 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각오다.
서곤 전공의는 "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길게 보면 인식 개선의 첫 걸음이 되겠지만 전공의의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민원을 일으키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쉽상이다"며 "내가 가진 힘이 크지는 않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는 것만으로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창하게 먼 미래의 커다란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지금 나와 같은 처치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숨쉬고 공감하며 그들이 가진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다"며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앞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