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분유와 스키용품을 판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제약사가 의약품 제조 및 판매라는 본업에 집중하지 않고 외도를 한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했던 선택을 지지하는 이가 많아졌다. 그렇게 안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바로 정부의 변화무쌍한 약가정책 때문이다. 이번에는 시장형 실거래가제를 재시행한단다.
정부의 돌발 선언에 제약업계는 한숨 뿐이다. 진저리가 난다는 표현도 나온다.
한국제약협회 등 6개 제약단체가 공동 기자회견 등을 열고 이 제도의 시행을 막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뜻을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내년도 사업 계획부터 손질에 들어가야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손실이 자명하다. 이를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대규모 처방약 약가인하 악몽이 엊그제 같은데 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터진 것이다. 이제는 분노할 여력도 없다.
이쯤 되니 본업 말고도 다른 부대사업에 손 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지 않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과거에는 제약업체가 의약품 외에 다른 사업을 손대면 비웃음의 대상이었죠. 자존심도 없냐는 비판도 나왔죠. 하지만 이제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애석하게도 본업 말고 미래 예측이 가능한 안정적인 그 무언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자신의 임기 안에 성과를 내려합니다. 이해하죠. 하지만 적어도 예측 가능한 정책을 내놔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성과 위주의 정책은 갑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무심코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제약업을 평생 업으로 삼고 20년 이상을 종사한 국내 A사 임원. 희망차야 할 새해를 앞뒀지만 그의 한숨은 이렇게 깊어져가고 있다.
한편,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병의원이 의약품을 제약사로부터 싸게 납품받으면 정부가 그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주는 제도를 뜻한다.
특히 병의원에 주사제 공급비중이 높거나 대형병원 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 등은 손실액이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