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의사채용 공고를 낸 A중소병원장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명 대학병원 순환기내과 펠로우 3년차가 지원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에서 교수 임용을 기다리다 포기한 의료진들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A중소병원장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급 인력인데 요즘에는 제 발로 찾아오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14일 중소병원계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중소병원의
의사 인력 채용이 크게 수월해졌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스펙 좋은 의사를 골라서 뽑을 수 있게 됐다.
최근 경기 불황과 보건의료제도 변화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대학병원에 불어닥친 경영난이 중소병원에선
고급 의료인력을 흡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영 위기를 맞은 각 대학병원들은 올해 교수임용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것은 물론 연차가 높은 펠로우를 줄이기 시작했다.
펠로우 연차가 높아질수록 교수 임용 압박이 커지고 이는 곧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펠로우 2~3년차의료진들은 눈물을 머금고 차선책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안과 전문의 3명을 충원한 B안과전문병원에도 대학병원에서 임상 경험이 풍부한 펠로우 출신 의료진이 대거 몰렸다.
B안과전문병원장은 "사실 채용공고를 내지도 않았는데 20여명의 지원서와 함께 소개서 및 추천서가 들어와 내심 놀랐다"면서 "1~2년 전에 비해 확연히 늘었다"고 했다.
그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교수 임용이 잘 안되면 개원시장으로 많이 빠졌는데 요즘에는
개원시장까지 악화되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C중소병원장도 얼마 전 의사를 채용하면서 새삼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고 귀띔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
콧대 높았던 의사들이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그는 "중소병원 시장에 구직에 나선 의사인력이 늘어난 것은 피부로 느낄 정도"라면서 "특히 연봉이 높고 근무환경이 좋은 일부 병원의 경우에는 기존보다 낮은 연봉을 제시해도 줄을 설 정도"라고 했다.
그는 "아직은 임상 경험이 있는 의료진의 경우 평균 월 1200만원(네트기준)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지금의
연봉선은 깨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중소병원은 의료진의 인건비 부담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채용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높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의사 인력이 쏟아지면 연봉부터 줄이려고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중소병원이 고급 의료인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지만 이는 수도권에 국한된 얘기다. 지방은 여전히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의사가 자녀교육과 가족들의 반대로 가능하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소병원협회 한 임원은 "내년이면 의사 연봉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면서 "의사 인력난이 극심한
지방 역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까지도 중소병원에 의사 수급이 부족했던터라 괜찮지만 펠로우가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구직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고액 연봉선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앞서 한의사, 변호사의 고액 연봉이 무너지는 것도 2~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면서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의사의 연봉도 빠른 속도로 추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