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다. 더 좋은 약이 나와 바꿨고 환자 반응은 완벽했다. 기존 병용 요법을 단독 요법으로 바꿨더니 약값까지 저렴해졌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어이없게 '삭감'이었다.
더 황당했다. 삭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존 요법으로 돌아갔더니 다시 삭감을 당했다. 삭감을 당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삭감 당한 것이다. 이 나라에 명확한 급여 기준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일단 참았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병원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심평원에 찍히면 없던 삭감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바닥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환자를 위해 그리고 의료진의 양심을 버릴 수 없는 나를 위해서다.
다약제 내성에
테노포비어(상품명 비리어드)
단독 스위치에 대한
급여 불인정.
지난 2012년 12월 테노포비어가 급여로 출시 된 후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다.
(참고로 단독 내성에 대한 테노포비어 단독 요법은 지난해 6월부터 급여 인정)
심평원은 다제 내성 치료에 테노포비어 단독 요법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편다. 하지만 이미 해외나 국내 치료 경험에서 입증되지 않았는가.
만족할 만한 환자 수는 아니지만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에서도 국내 데이터로 이를 입증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내성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추가 내성을 막기 위해 초기에 병용 요법이 권장된다.
하지만 장기 치료는 많은 것을 고려한다. 내성은 물론 부작용이나 경제적 부담도 봐야한다. 다제 내성이 발생했다고 병용 요법을 무한정 지속할 수 없는 이유다.
한번 다제 내성이 검출됐다고 병용요법만 무한정 강요하는 것은 진료 지침의 한 문장만 보고 전체적인 의학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위험한 발상이다.
현재 다약제 내성에 테노포비어 단독 요법이 근거가 없다며 삭감되는 사례들이 수두룩 하다.
하지만 이 약의 내성 보고는 어디에도 없고 테노포비어가 내성 바이러스 치료에 기존 약보다 우수하다는 데이터가 충분하다.
물론 모두에게 이를 적용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약물의 선택, 교체, 추가 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개인 환자에서의 치료 반응이라는 점을 인정해줬으면 한다.
"최신 지견 즉각 못 따라가는 급여 기준은 이해는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겠다. 환자가 다른 만큼 천편일률적인 심사 기준은 옳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이 발생한다.
이미 테노포비어 단독 요법으로 완전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이 삭감 때문에 기존 병합 요법으로 변경했다가 바이러스가 재발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해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겠다. 의학적 교체 사유 미비와 다제내성 치료에서의 단독요법 불인정을 빌미로 한 무차별한 삭감은 의학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다.
보험 재정은 물론 환자의 경제적 부담 측면에서도 도움이 안 된다. 당연히 시정이 요구된다.
고혈압, 당뇨병, 간염 등 장기 투약이 필요한 만성 질환에서 새 약품으로 교체할 때 의학적 사유를 요구한 전례는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숨이 나온다.
대한간학회가 올 상반기 안에 가이드라인 일부 변경을 추진한다. 기다려보겠다.
심평원도 최신 지견에 맞춰 모두 급여를 해줄 순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것은 재정적인 측면을 고려해도 시급히 시정돼야한다.
오늘도 삭감이 두려워 소신 처방을 못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