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나를 똘미 선생님, 똘미 상무님으로 부른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운명처럼 따라온 애칭이다. 당연히 '김똘미'라는 이름 석자 때문일테다.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남들이 가질 수 없는 애칭을 얻었다. 그것도 친근감 있는. 진료 현장을 떠난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환자들은 아직도 내 안부를 묻는다. 어떻게 보면 복이다.
향후 사노피 의학부 총괄하면 똘미 선생님, 똘미 상무님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환자들이 나를 좋게 기억하듯이.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사노피 의학부 총괄인 나는 속칭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팀원들의 개별 재능과 능력 등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역할 배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다. 연인 관계의 밀고 당기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팀원도 굉장히 전문 지식을 가진 분들이라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기본 원칙이 중요하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빛나게 하자'고.
일단 일을 맡기기 전에 팀원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그리고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그들에게 이해와 인정을 받았다. 새 역할을 맡으면서 알게 된 큰 자산이다.
이름이 독특하다
맞다. 흔치 않은 조합이다. 특이함의 단계가 있다면 어떻게 보면 쇼킹한 이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께서 특별한 인물이 되라고 지어주신 것 같다.
덕분에 에피소드도 많다. 점을 봐도 한문이 없어서 점괘가 안나온다. 일본이나 중국에 입국할 때 한글을 쓰면 심사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신이 모르는 한자인 마냥 한참 들여다 본다.
이름이 특이하다보니 기억되고 싶지 않는 장면도 기억되는 나쁜 점도 있다. 나에 대한 기억을 좋게 하려면 상대방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줘야하는데 늘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크게 위법하게 살지 않아서 큰 탈은 없었다.
단점은 곧 장점이 될 수 있다.
진료를 볼 때 환자들이 김 선생님이 아닌 똘미 선생님으로 불렀다. 굉장히 친근감 있는 표현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간호사도 환자도 그렇게 불렀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애칭을 그들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통계를 내보니 일년에 4만 명을 진료한 적이 있다. 엄청난 숫자다. 하지만 환자들이 나를 기억한다. 지금 진료 현장을 떠난지 10년 가까이 됐는데도 안부를 묻는다. 환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다른 쪽에서 기여한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사노피에서 맡은 역할은
의학부 총괄을 맡은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사실 너무 힘들다. 이전에는 백그라운드인 당뇨병에 포커스를 맞춰 내 일만 하면 됐다. 그래서인지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안했다.
하지만 의학부 총괄은 경영을 해야한다. 팀원의 각기 다른 재능을 꼼꼼히 파악해 적재적소에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특히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끊임없는 동기 부여와 용기를 주고 장애물은 제거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유기적으로 일하도록 큰 프레임을 짜줘야한다. 요새말로 '밀당'이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이들을 움직이려면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 그들을 먼저 이해하고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이해시켜야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팀이 빛나는 것이다. 팀원들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나를 믿고 따라오면 전혀 불안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다.
내게는 코리아 리전 등 흔치 않은 경험이 있다. 원한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내 경험을 나눠줄 것이다. 팀원이 빛날 때 나도 빛난다.
회사에서 의학부 역할은
예전에 전통적인 제약사가 의사를 접근하는 방법은 대단히 관계지향적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며 또 해서도 안된다. 의료진 수준도 높아졌다.
사노피 의학부는 의료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의료진의 궁금증이 우리 약과 관련 없어도 근거 중심의 데이터를 모아 기꺼이 제공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팀원들의 전문성은 상당하다. 의료진과 아이디어를 공유해 임상 계획을 짜기도 한다.
굉장히 고비용 인력이지만 의사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눈높이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회사는 이를 감수하고 있다.
사노피 기조는 환자중심주의다.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한 컨셉이 아니다. 당연히 가야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의료진과 제약사의 공동 목표는 병 치료다. 그럴려면 환자를 이해해야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당뇨환자는 자신의 당뇨라는 것을 하루 종일 인식하고 지낸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부터다. 밤새 저혈당이니 아침에 고구마를 먹어도 될까. 식후 30분이 지났는데 인슐린을 맞아도 될까. 그러다 저혈당 빠지지 않을까. 가짜 저혈당은 없을까.
이렇게 수많은 궁금증이 있을 수 있지만 환자나 그 가족이 아니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제약사는 환자가 원하는 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약사는 환자를 볼 기회가 적다. 그래서 의료진과 끊임없는 피드백을 한다.
이것이 사노피의 환자중심주의다.
사노피는 대표 등 핵심 자리에 여성이 많다
성별보다는 능력을 보기 때문이다. 사노피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탁월하다. 육아 여성이 퇴사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환경 조성이 안됐을 뿐이다.
또 하나. 사노피에서는 컨텐츠만 있으면 능력을 인정받는다. 프랑스 회사라서 그런지 크게 영어 발음 등에 신경 쓰지 않는다. 부수적인 것보다는 내용에 충실한다는 얘기다.
제약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제 제약 의사는 하나의 커리어 패스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제약사가 편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오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길을 잃게 된다.
덧붙인다면 제약사 입문을 굉장히 넓은 시선으로 봐달라는 거다. 본인의 탤런트에 따라서 열가지 이상의 길이 있다. 와서 원하는 길로 가면 된다.
전문 지식이 굉장히 뛰어난 의사도 있지만 마케팅을 잘 하는 의사도 있다. 본인의 능력을 키우고 발휘하면 된다.
의사 결정 과정에 어려움은 없나
정확한 이해다. 병원에서는 내가 결정권자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몇 년간 주도하는 습관을 갖다보면 자연스럽게 대장질을 하게 된다. 여의사들이 집에서 가장 잘 듣는 말도 '남편에게 대장질 한다'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그곳의 프레임에 맞게 몸을 변화시킨다.
처음 제약 의사로 입문하면 메디컬 어드바이저 등의 역할이 주어진다. 더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이 부분을 충실히 해야한다. 서서히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고 또 인정받는다면 멋진 새 역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