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D·H·Y 제약 영업사원의 하루
개원의가 농담조로 묻는다. "자네는 대체 어느 제약사 직원인가?"
분명 우스갯 소리다. 근데 어찌보면 헷갈릴 만도 했다. 내가 판촉하는 제품이 우리 회사가 아닌 타사 약이기 때문이다.
난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이다. 그런데 주 업무는 다국적 제약사 제품 판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고? 요즘 국내 제약에서 불고 있는 외자약 가져오기 열풍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재주가 좋다. 남들은 하나 하기도 힘든 대형 품목 판촉 계약을 쉬지 않고 따오기 때문이다.
조만간 남들이 놀랄 만한 대형 품목이 또 하나 들어온다. 이번엔 고지혈증약이다. 이 약도 우리 회사 약보다 우선 순위로 열심히 팔아야겠지? 또 다시 혼잣말을 해본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같이 먹거리 없는 시기에 브랜드 네임 좋은 다국적제약 신약이 들어오면 영업하기 편한 게 아니냐고. 일각에서는 부럽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그건 속사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게는 부담 그 자체다. 품목 제휴 특성상 단기간에 판촉 능력을 보여줘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팽' 당할 지 모른다.
때문에 회사도 난리다. 단기간 성과를 위해 품목 제휴 제품에 판촉 가산점을 더 준다. 외자약 팔면 2점, 회사 제네릭 팔면 1점 이런 식이다. 그야말로 특별 관리다.
이렇다보니 요즘은 마치 어떤 국내제약이 품목 제휴 능력이 뛰어난가를 검증받는 시대 같다.
품목 제휴가 많다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관절약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앙숙'인데 당뇨약은 서로 돕고 살아야하는 '형님 아우'가 되는 식이다.
이해 관계만 맞다면 한 쪽에서는 경쟁 관계여도 한쪽에서는 협력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각기 다른 마케팅 방식도 잘 구분해 습득해야한다.
많은 품목 제휴로 다양한 다국적 제약 제품을 갖고 있다보니 각사에 맞는 영업 방식을 습득하고 따라야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계약 위반 등의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실제 다국적 A사의 의사 대상 세미나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할 수 있지만 외자 B사는 아니다. 바다가 보이면 리베이트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B사의 내부 규정 때문이다. 잘 구분해야한다.
품목 제휴 홍수.
물론 이해는 한다. 먹거리가 없는 만큼 당장의 위기는 넘겨야 한다. 외부 시선이 신경쓰이는 상장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외형 유지는 해야한다.
품목 제휴 장점은 각기 다른 다국적제약의 마케팅 방식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에서 다소 약했던 근거 중심 영업 등이 그런 것이다. 향후 수출 등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은 못내 지울 수 없다.
영업 현장에 가서 우리 약을 우선 순위로 판촉한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소속은 국내 제약인데 외자약을 팔고 다니는 꼴이라니 어떨 때는 한심하다.
3월에는 유독 품목 제휴 소식이 많을 것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대형 품목들이다. 당뇨약 2개(DPP-4 억제제, SGLT-2 억제제)와 고지혈증약 1개가 그것이다.
또 한 번 외자약을 가진 국내 제약사끼리의 영업 전쟁이 시작된다는 소리다.
품목 제휴 홍수에 갇힌 국내 제약 영업사원들.
나 역시 그 속에서 오늘도 외자약 팔러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