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나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 특정 병의원은 파격조건으로 임대합니다."
경기 불황과 환자 감소 등의 영향으로 개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개원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개원 신용 대출 한도 축소에 따라 공동 개원 형태가 유행하기도 하고, 높아지는 폐업률에 양도양수 선호나 신도시로 이전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던 건물주가 1년간 렌트프리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병의원 원장 모시기 경쟁에도 뛰어들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경기 불황과 건물 공실률 증가에 따라 바뀌고 있는 개원 환경을 짚어봤다.
공실률 증가에 보험과 원장님은 '귀한 몸'
최근 빌딩 전문업체 리맥스와이드파트너스가 발표한 서울 여의도 지역의 작년 4분기 오피스빌딩 127동의 공실률은 무려 17.5%에 달했다. 대략 5곳의 상가 중 1곳은 놀고 있다는 소리다.
지난 해 초 퍼라퍼트리가 발표한 서울 지역 연면적 3만 3000㎡(1만평) 이상 빌딩 327동에서 나타난 14.1%의 공실률 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경기 침체와 빌딩 공급 과잉에 따라 공실률이 급증하자 병의원 유치 전쟁도 불이 붙고 있다. 특히 한번 입주하면 오랜 기간 계약하고 임대료 연체 우려도 적은 보험과 위주의 선호도가 치솟고 있다.
최근 송파 위례신도시 S빌딩은 "내과와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 특정 과 입주시 파격조건으로 임대를 실시한다"는 문구를 내걸고 원장 모시기에 나섰다.
3~4층을 크리닉센터로 구성한 S빌딩은 3.3㎡당 분양가도 700만원에서 1300만원 수준으로 낮게 책정했다.
과거 '병의원 우선' 등의 구호가 이젠 이비인후과, 내과, 소청과 선호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는 것.
지역 임대업자는 "사무실은 연간 단위로 계약을 하지만 병의원은 최소 2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면서 "공실률이 높아질수록 특정 과의 선호 경향도 강해진다"고 전했다.
개원컨설팅 전문 골든와이즈닥터스 장영진 팀장은 "건물주들이 한번 계약하면 잘 나가지 않는 병의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면서 "특히 최근 2~3년 새 이비인후과와 안과, 소아과 등 보험과 선호도 증가가 눈에 띄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방전이 나오는 과가 입주하면 자연스레 약국도 들어오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면서 "1년 임대료 무료와 인테리어 비용 지원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고 전했다.
"지방은 더 심각…5년간 임대료 면제"
지방으로 내려갈 수록 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 충남의 모 상가는 8개월 전부터 소청과 입주시 3년 무료 임대를 내걸고 있다.
대전의 모 빌딩은 이비인후과나 소총과 입주시 5년간 월 임대료 무상지원이라는 파격적 조건을 내세웠다.
충북 시내에는 서너 빌딩 건너 한 곳 꼴로 병의원 임대 현수막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원장님은 이제 귀한 몸이 되고 있다.
아예 '권리금 없음'을 명시한 곳도 눈에 들어온다.
상황이 이렇자 지방에서는 아예 건물주가 '을'의 위치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 부지로 뛰어오르던 10년 전, 부르는 게 임대료였던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된 것.
서초구의 모 건물주도 병의원을 찾는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원장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부터 임대물건을 내놓았지만 아직 나가지 않아 병의원 자리를 다른 직종으로 전환할까 고민 중"이라면서 "문의하러 오는 원장들도 임대료 무료 기간나 간판비용 지원 여부까지 꼼꼼하게 조건만 따지다 간다"고 귀띔했다.
깐깐한 원장님을 모시기 위해 예상 환자 수를 제공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전 임차인이 운영하던 병의원의 일 평균 환자 수를 조사해 아예 임대 광고에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
병의원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M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병의원을 임대할 때 위치와 면적, 임대료, 특징 정도만 기재하면 알아서 입주하던 때가 있었다"면서 "이제는 기존 병의원의 일 평균 환자 수까지 조사해 알려준다"고 귀띔했다.
그는 "소청과나 내과 등 보험과가 입주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일 평균 환자 수"라면서 "환자 수 정보 제공은 보험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