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이 실시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지자체는 사업 추진을 위한 추경 예산 편성은커녕 예산 편성 가능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 시행을 위해 국가예방접종대상 감염병에 소아폐렴구균을 포함하는 '정기예방접종이 필요한 감염병 지정 등' 및 '예방접종의 실시기준 및 방법' 고시 일부개정(안)을 11일부터 오는 18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2개월~59개월 이하 영·유아와 만성질환 및 면역저하 상태의 어린이는 전국 7000여 지정 의료기관에서 주소지와 관계없이 소아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지자체는 소아폐렴구균 예방백신 무료접종 시행을 위한 예산 편성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필수예방접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와의 매칭펀드 식으로 예산이 마련되는데 소아폐렴구균 예방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NIP,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 도입이 올 1월 갑작스레 결정됐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사업 시행을 위한 추경 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 1월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소아폐렴구균 예방접종을 국가필수예방접종(NIP,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에 추가하고 사업예산으로 586억원을 신규 배정했다.
소아폐렴구균 예방접종 정부예산 586억원 중 45억 4500만원은 보건소에, 나머지 540억 5500만원은 민간 병·의원에 지원될 예정이다.
이 예산은 당초 정부 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과정에서 기재위 안종범 의원(새누리당)의 주장에 따라 신규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올해 예산안을 마무리 지은 지자체로서는 올 1월 결정된 소아폐렴구균 NIP 도입과 관련한 예산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다.
더구나 시행이 불과 20일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관내 모든 시·군의 추경 편성 여부를 파악하기란 지자체로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단은 지원받은 국비와 다른 NIP 약품비로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 사업을 시행하겠다는 지자체가 대부분이다.
무료접종 코 앞, 이제서야 추경 파악 나선 지자체
지방의 C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최근 복지부로부터 공문을 받은 후 관내 자치구의 추경 편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직 취합이 안 되고 있다"며 "일단은 소아폐렴구균 외 다른 예방백신의 약품비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내 일부 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의왕시보건소 관계자는 "아직 매칭펀드대로 추경이 편성되지는 않았고 지방비 50%, 기금 50%로 해야 한다"며 "의왕시의 경우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을 위해 20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상황이 어려우면 기존 예방접종 약품비에서 돌려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지자체는 그동안 예방접종사업을 담당하던 공무원이 타 부서로 이동한 후 새로 보직을 맡은 직원이 정확한 업무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 지자체 보건행정 업무 담당자는 소아폐렴구균 예방접종 사업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새로 온 지 한 달 밖에 안 돼서 잘 모른다"며 "다만 전임자로부터 시군에 예산 확보를 통보하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지자체 "질본 공문 이번주에서야 받아"
이 담당자는 중앙정부로부터 공문이 늦게 내려온 점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은 바로 다음 달부터 시행인데 중앙정부의 관련 공문은 이번 주에서야 받았다"며 "시군별로 예산 미확보 부분을 파악 중이다. 이달 내내 모니터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상남도는 아직 추경 예산을 편성한 시·군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도 복지보건국 관계자는 "추경 편성은 7월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과 관련해 아직 추경을 편성한 시군은 한 곳도 없다"며 "지난 9일 관내 20개 시·군에 공문을 하달했는데 추경 여부에 대한 파악이 완료돼야 정확한 내용이 나올 듯싶다"고 강조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 있나?"
소아폐렴구균의 NIP 도입과정부터 시행까지 과정이 지나치게 급하게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지방 모 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최선은 NIP 도입을 지난해 결정함으로써 올해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고, 차선은 올해 초 NIP 도입이 결정됐다 하더라도 각 지자체의 추경 편성 여부를 지켜본 후 안정감을 갖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추경 편성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예산을 당겨써서 사업부터 시행하려니 행정적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소아폐렴구균을 NIP에 포함시켜 영유아 부모의 보육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는 좋다"며 "그런데 지금처럼 무리하게 서둘러 시행해야 할 만큼의 시급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질본 "1월부터 지자체에 충분히 교육했다. 예산 미확보는 지자체 책임"
반면 질병관리본부는 소아폐렴구균 무료접종 사업에 대해 그동안 지자체에 충분히 알렸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관계자는 "지난 1월부터 지자체 담당자들과 전화통화는 물론 워크숍 및 교육까지 진행했다"며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한 지자체는 서울의 일부 자치구를 제외하곤 없었다. 지자체가 이미 사업을 알고 있었던 만큼 예산확보를 추진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예방접종은 중앙정부가 아닌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에게 사업의 책무가 있다"며 "그쪽에서 먼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자체에서 추경 편성에 어려움을 있겠지만 원활한 사업 시행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부 예산이 소아폐렴구균, HIV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국가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사업 진행이 충분할 것"이라며 "급하게 추경하려면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단 기존 예산을 사용한 후 7월 초 추경 예산으로 채우면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