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하하아!!"
허둥대며 베개 옆에 둔 휴대전화를 더듬어 보니 4시 반, 이른 새벽이다. 혹시 못 일어날까 5시 반부터 10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무색하게 오늘도 잘만 일어났다. 워낙 잠을 얕게 자는 편이라 피로감은 없지만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난 것은 역시 짜증이 난다. 다시 이불 속에 쿡 웅크려 보아도 이미 잠이 깨버려서 이불을 걷어차 버렸다. 실습 시작 후, 벌써 한 달이나 의도치 않게 일찍 일어나고 있다.
무채색 향연인 옷장 안에서 엊저녁 미리 정해둔 옷을 꺼내 입고 냉장고를 열어 주섬주섬 먹을 것부터 찾았다. 예전에는 아침밥을 걸러도 괜찮았는데, 요즘에는 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어지러워서 삼시세끼 꼭 챙긴다. 너무 새벽이라 밥은 안 넘어가고, 과일은 이가 시리고... 이것저것 따지다, 지하철을 놓칠까봐 급한 마음에 결국 우유 한 잔에 과자 나부랭이 하나 씹으면서 집에서 나왔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피곤한 게 하루 종일 힘들 예감이다. 채 7시를 넘기지 못한 시간이 새삼 슬프다.
"이상, 컨퍼런스를 마치겠습니다."
삼엄했던 아침 컨퍼런스가 끝나고 드디어 병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실습학생들은 바로 시작된 회진을 따라다니며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의 말씀에 귀동냥을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보고 듣고 배우되, 먼지마냥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걸리적거리지 않기! 열심히 거대 먼지에 빙의되어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흘깃 뒤를 돌아보신다. 뭐 잘못한 것이 있나 눈치를 살피니 그러 것은 아니고, 질문을 하실 모양이다. 하필이면 저번 시험 문제 답이 4번이었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희미한 질병의 환자를 회진중이라 가슴이 콩닥거린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갔지만 이미 관자놀이에 식은 땀이 고였다. 다시 교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래도 제법 기억나는 질병에는 목이 빳빳하지만 아예 기억에 없는 질병 앞에서는 개미만큼 움츠린 내 모습이 웃겨서 속으로 킥킥대다보니 어느새 회진이 끝났다. 질문은 없었으나 오늘 본 질병들을 공부해오라며 돌아서는 교수님의 뒷모습에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일과 사이의 틈새 시간에 공부나 하려고 책을 펼쳤는데 세 장쯤 보니 졸음이 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게 생각이 나, 잠시 눈만 감았다 떴는데 오후 일정시간이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하게 엎드려 자기라도 할 걸 잔뜩 긴장만 한 몸이 원망스럽다. 겨우 정신 차리고 오후 일정에 몸이 익을 때 쯤 되니, 에듀 치프 선생님이 오늘은 이만 퇴근하란다. 웬일로 일찍 끝나서 잠깐 친구나 만날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내 저녁 회진을 준비하러 들어오시는 선생님들 발걸음에 주섬주섬, 하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게 짐을 챙겨 병원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주말에나 연락해봐야겠다.
같이 실습을 하는 동기들과 나름 스펙터클했던 하루를 조잘대다 보니 어느 새 집 앞 지하철역이다. 내일 또 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애잔한 게, 전우애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홀로 타박타박 집으로 가면서 저녁에 맥주나 한 잔 할까 싶어 편의점을 기웃거리는 데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가 생각나 그냥 왔다. 손가락을 날려가며 가까스로 과제를 마무리하고 나서 맥주대신 영화라도 보려고 슬쩍 시간을 봤더니, 어머나 벌써 11시다. 영화는 무슨, 내일을 위해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알람은 아침 5시 반부터 십분 간격이지만, 혹시나 늦잠 잘까봐 5시 35분에 하나 더 맞춰 놨다. 퍽퍽한 허리가 침대에 닿자 느껴지는 시원함에 하루를 돌아볼 새도 없이 잠이 들었다. "우리에게 24시간은, 정말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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