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배우기 까다로운 운동이다. 라켓을 휘두르는 동작과 공을 보고 치는 타이밍을 수도 없이 연습하고, 그게 잘 되기 시작하면 게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각종 기술들을 습득해야 '테니스 좀 친다'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인내를 가지고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한다.
나는 누군가 여가시간에 뭐하냐고 묻으면 지체 없이 '테니스'라고 답할 만큼 테니스를 좋아한다. 의전원에 입학하기 전에 스쿼시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라켓과 친숙해졌다는 이유로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실력이 쉽게 늘지는 않았지만 공이 라켓에 정확히 맞았을 때의 타격감과 조금씩 몸을 컨트롤하면서 동작을 익히다보니 조금씩 재미를 붙이게 됐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테니스의 장점을 말하라면 열 개 이상은 줄줄이 나열할 수 있지만, 그러면 듣는 사람이 무척 따분해할 것이므로 간단히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운동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몸을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걱정거리에 얽매여있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엔돌핀도 분비돼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일 때 까지는 느끼기 힘들 수도 있지만 공이 점점 잘 맞기 시작하면 테니스만큼 재밌는 운동이 없다. 그동안 학교생활하면서 느끼는 압박감이나 걱정들을 테니스를 치면서 상당 부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인내력을 기르게 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테니스는 어떤 경지에 오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종목이다. 하지만 쉽게 풀리는 문제는 시시하듯이 운동도 마찬가지여서 쉽게 정복되는 운동은 재미가 없다. 테니스는 그런 면에서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면서도 잘 하기 위해서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육신과 끊임없이 분투해야한다.
마지막으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테니스 대회 중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윔블던(영국에서 매월 6월경에 열린다)은 복장 규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상,하의, 신발까지 모두 하얀색으로 맞춰 입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테니스를 두고 '백색의 테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학교 코트에는 항상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가끔씩 테니스화가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 오는 학생들을 지적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그 뿐만 아니라 테니스 경기 전/후에 상대에게 예를 갖춰서 악수하며 인사를 하고 경기 중에도 항상 첫 서브를 넣기 전에 상대에게 목례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공을 건네줄 때도 받기 편하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은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기본예절이다. 또한, 상대방이 멋지게 득점했을 때 오히려 박수를 쳐주는 매너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도 있다.
테니스를 좋아하다보니 유명한 선수들의 경기를 가끔씩 시청하는데,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된다. 특히 나는 현재 남자 세계 랭킹 1위인 나달 선수를 좋아한다. 단지 그가 1등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나달의 테니스는 진화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프로 데뷔 초반에는 다소 방어적인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곧 공격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당시 '테니스 황제' 페더러와의 맞대결에서 이기면서 승승장구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2012년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7개월간 모든 대회와 훈련을 중지하는데, 그는 부상을 계기로 그동안 '밋밋한 서브, 평범한 서브' 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획기적으로 뒤엎고 새로운 모습으로 복귀한다.
전략적으로도 강한 서브로 득점하게 되면 경기시간을 줄일 수 있고 그렇게 하면 무릎에 무리가 덜 가므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강력한 서브를 장착한 뒤에 나달은 첫 메이저 대회였던 2013년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이 확정되자 코트 바닥에 엎드려서 엉엉 울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몹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동안 테니스를 치지 못했던 답답함과 불안함, 육체적인 고통이 그 순간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을 것이다. 그가 어려움을 딛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만하지 않는 마인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I doubt about myself. I think the doubts are good in life. The people who don't have doubts I think only two things - arrogance or not intelligent."
한국말로 의역하자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테니스를 이야기하다보니, 이건 마치 의학을 배우는 일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내해야하고 먼저 의학의 길을 걷고 계신 선배뿐 아니라 함께 의학을 배우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항상 예를 갖춰야하며 무엇보다 아픈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덕목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덕목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려운 분야인 만큼 끈기와 도전정신, 겸손함으로 묵묵히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나달처럼 세계에서 1등하는 의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정신력만큼은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