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진학할 정도의 학생이라면 대개 고등학교 성적 및 수능성적이 좋은데, 특히 수능 고득점으로 진학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공부법에 대해서는 통달했다고 자만하기 쉽다. 수능은 원리에 대한 이해, 몇가지의 전형적 유형분석, 원리의 응용과 적용이 적절히 버무려진 시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과 1학년이 되면 그 확신이 살짝 흔들리지만 본과생활에 적응을 하면 더 큰 확신을 얻는다. 시험을 적어도 한 학기에 10번정도는 치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도 수업-강의록-필기-교과서-족보 사이에서 균형잡기를 통해 최고 효율을 얻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
이렇게 말하고보면 다들, 사회의 고정관념대로, 공부의 무림고수가 되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다. 학생으로서 만나는 학문의 영역을 크게 나눠보자면 의학이라는 '학문 자체', 교수님이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점이라고 여기는 것, 내가 공부하는 것 정도이다. 그들을 비교하면
의학>>>>>>>>>>교수님 요구량>>>>>>>>~>>>공부량
정도가 되겠다. 공부량은 족보에 없지만 중요해 보이는 내용이나 교수님이 추가적으로 설명하신 부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공부하는 학생부터 교수님이 밑줄치고 형광펜긋고 별표까지 친 내용만 공부하는 학생까지, 학생에 따라서 매우 넓은 분포범위를 가진다.
역사에 길이 남을 과학자 뉴턴도 과학자는 진리라는 광활한 바다를 앞에 두고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지만, 나름대로 공부하려고 열과 성을 다하고 보니 교수님 요구량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면 답답함을 참기 힘들다. 일단 아무리 공부해도 통달할 수 없을 의학의 깊이와 넓이에 놀란다. 그러고 나서 '난 아직 학생이니까' 하면서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다가도, 뉴턴이 조개껍질을 줍는 동안 나는 해변에 가까이도 못오고 바다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 수준에서 그치는 거 아닐까, 두려움을 떨쳐내기 어렵다.
공부가 할면 할수록 어려운 이유는 공부를 할수록 학문의 넓이와 깊이를 재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시험 고득점 전략 -교수님 요구량을 최대한 채워가며 (시험)공부하기=언젠가는 나의 피와 살이 된다>, <유급 피하기 전략-'노세 노세 본과때 노세' 정신으로 족보만 눈에 바르고 지나가기=기본개념만 철저하게>, <교과서 몸부림 전략-어떻게든 교과서를 붙들고 씨름하며 몸부림쳐보는 것=이것이 학구적 자세의 기본이지> (마지막 전략을 보고 책을 읽어 숲과 나무를 그려가며 개념을 잘 정립하려는 노력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지만 가슴아프게도 '중요한 것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기본적 학습법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돈키호테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전략을 정의하기가 모호하기는 하다.) 이 중 누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일까? 이들 중 누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고, 장기적 성과를 거둘지 점칠 방법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결국 자기 팔자라는 것을 답으로 믿고 있기는 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해변에서 멋진 모래성을 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을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