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정부가 발표한 6차 투자활성화대책을 통해 그동안 각각의 이유로 고수해 온 각종 규제를 한방에 풀어준 것을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저수가 구조와 각종 규제로 답답함을 호소했던 일부 의료기관과 보건의료 관련 기업들은 투자활성화의 청신호라며 적극 반기는 반면 의료계 일각에선 의료영리화를 허용한 셈이라며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저수가 체계에선 어차피 고사…뭐라도 해보자"
12일 정부가 발표한 6차 투자활성화대책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메디텔 설립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종합병원 내 의원임대를 허용한다.
또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외국병원 설립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해외환자 유치와 관련해 국내 보험사의 해외화자 유치를 허용해줬다.
이와 함께 의과대학 산하에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허용, 대형병원의 영리자회사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줄기세포치료 및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에 대해서도 임상 1상을 면제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대해 일단 병원급 의료기관은 이번 투자활성화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장 의료서비스만 해서는 먹고살 수가 없어 답답한 참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는 입장이다.
병원협회 이계융 상근부회장은 "규제완화 혹은 병원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지속적으로 더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병원협회 정영호 부회장도 저수가 체계에서 살길이 열렸다며 반겼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도 투자활성화대책은 저수가 구조에서 어쩔 수 없는 대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정영호 부회장은 "저수가 체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 상태로 몇년 후면 병원은 고사할 게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투자활성화대책은 거부할 수 없는 씁쓸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병원이 문을 닫게 생겼는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의료서비스가 됐건, 부대사업이 됐건 무슨 상관이겠느냐"면서 "이를 통해 당장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만으로도 반갑다"고 덧붙였다.
"모든 정책의 목적은 '돈 벌이'…'사이비 의료 공화국' 만들건가"
이처럼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병원들은 정부 정책발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선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근거중심 의학을 주장해온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종양내과)는 이번 정부 정책을 두고 "새로운 내용은 없이 그동안 시도했다가 문제점이 발견돼 미뤄왔던 사업들을 '서비스 산업 육성'이라는 미명아래 모두 쓸어 넣어놨다"고 총평했다.
그는 "투자활성화대책이라도 내놓은 것 하나 하나가 모두 '돈 벌고 보자'는 식"이라면서 "한국의료를 '사이비 의료'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특히 신약 및 신의료기술의 임상시험 규제를 완화, 임상 1상을 면제해준 것에 대해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봤다.
그는 "줄기세포 및 유전자치료제의 임상시험은 안전성,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인데 정부가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치료제를 환자에게 허용했다는 것은 상당히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임상시험에서 안전하고 유효하다고 결론이 날 가능성이 낮은 데 이를 무시한 채 규제를 완화한 것도 문제지만 이에 따라 경제적 부담은 어쩔 수 없이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는 중증환자에게 돌아가는 것도 있어선 안될 일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이번 정부의 정책은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것에도 결코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국가에서 보면 한국은 국제 규범에 어긋난 임상시험을 하고 안전성도 입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는 곳인데 진료를 받으러 오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이는 한국 의료에 대한 국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당장의 이익을 쫒다가 결국 당초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원하는 것은 이번 서비스 활성화 대책을 통한 고용 창출인데 이를 위해선 줄기세포의 임상시험 규제를 완화할 게 아니라 간병 등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병서비스는 고용창출이 많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뒤로한 채 돈 벌이에 급급한 정책만 쏟아내놓고 어떻게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허 교수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서도 "시민단체가 반대해온 미국식 영리법인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셈"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