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 기왕증을 이유로 진료비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소송에 나서 의미있는 판결을 얻어냈다.
그간 병의원들은 환자의 기왕증 유무에 따라 보험사의 일방적인 진료비 미지급이나 삭감으로 속앓이를 해왔지만 재판부는 기왕증의 입증 책임이 병원이 아닌 보험사에 있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광주지방법원 제3민사부는 J 대학병원과 보험사간 기왕증 여부에 따른 진료비 분쟁건에 대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 심사 결정에 기한 진료비반환채무 및 심사수수료지급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진료비를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J 대학병원이 불과 124만원을 가지고 소송에 나서게 된 발단은 이렇다.
B 환자는 2007년 교통사고를 당해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진단을 받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2008년 J 대학병원으로 전원해 치료를 받았다.
J 대학병원은 2011년 1월 20일부터 3월 3일까지 발생한 진료비 434여만원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진료비 청구가 일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심의회)에 심사를 청구했다.
심의회가 진료 중 불필요한 내역이 있다며 심사수수료를 포함해 124만원을 반환할 것을 결정하자 보험사는 이 결정에 덧붙여 이미 사고 이전부터 B 환자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기왕증이 있었다며 진료비 지급을 거부했다.
반면 대학병원 측은 "B 환자와 관련된 진료는 모두 필요하고 적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심의회가 결정한 진료비 반환과 심사수수료 지급의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먼저 재판부는 심사결정의 법적 구속력과 입증의 책임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심의회의 구성, 심사절차, 심사결정 효력 등에 관한 규정을 종합해 볼 때 심사결정을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심의회 심사결정을 통지받은 병원이 법이 정한 기간 내 소를 제기한 이상 심사결정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진료비가 부당이득이 되는지 여부는 심사결정에 의해 가릴 게 아니라 민사소송의 주장, 입증 책임의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부당이득 반환에 있어서 입증 책임은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하는 자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이어 "보험사 측 주장만으로는 진료비가 불필요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의사협회의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를 봐도 진료 내역은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는 치료를 위해 필요하고 적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왕증 여부도 보험사의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설령 환자에게 일부 통증 양상, 감각, 자율신경 및 운동의 이상 증상과 같은 기왕증이 있었다 해도 이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몇 가지 임상증상에 그친다"며 "사고 전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 있었다는 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임상증상이 일부 있었더라도 환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해 왔다"며 "사고 직후 격렬한 통증을 수반한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증상이 발현했고 그 발병 요인이 개인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사고 이전부터 통증증후군이 있었다는 보험사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