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요양병원이 HIV/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이하 에이즈) 감염자 입원을 거부할 수 없도록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질병관리본부는 20일 의료법 시행규칙 중 요양병원 운영에 대한 내용을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요양병원의 운영) 제2항에 따르면 '전염성 질환자는 요양병원의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돼 있다.
일선 요양병원들은 이러한 의료법 시행규칙을 내세워 에이즈 감염자를 전염성 질환자로 보고 입원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감염자는 전염성 질환자로 포함되지 않는다며 시행규칙 개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는 시행규칙 개정에 앞서 요양병원들의 에이즈 감염자 입원 장려를 위해 별도의 환자분류 기준을 마련해 요양병원의 수가를 인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 1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내년부터 요양병원 환자분류 기준에 에이즈 환자를 추가시키기로 했다. 즉, 별도 환자분류 기준을 신설해 에이즈 감염자를 받은 요양병원은 수가로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관계자는 "현재 전염성 질환자의 요양병원 입원 금지를 명문화한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기 위해 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일단 에이즈 감염자를 전염성 환자로 보지 않는다는 골자로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행규칙 상 에이즈 감염자는 요양병원 입원이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넣겠다는 계획"이라며 "현재 시행규칙 개정을 위해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와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환자가 전염성이 우려돼 환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요양병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에이즈·결핵관리과 관계자는 "에이즈 감염자는 주기적으로 약을 먹으면 전염성이 없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요양병원들이 시행규칙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전염성이 아니라 다른 입원환자들이 대거 이탈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도 일부 요양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며 "에이즈 환자는 합병증이 우려되기 때문에 고도의 의료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분류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 입원환자 대거 이탈 우려 '멘붕'
질병관리본부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소식이 알려지자 요양병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시행규칙이 개정된다면 더는 에이즈 감염자의 입원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요양병원에서는 에이즈 감염자 입원 시 다른 환자들의 대거 퇴원은 불가피하다며, 병원 경영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수도권 A 요양병원장은 "질병관리본부는 전염성 질환으로 에이즈를 보지 않고 있지만, 일반적인 국민인식은 다르다"며 "환자들의 대거 퇴원은 불 보듯 뻔하다. 에이즈 감염자의 입원 여부에 따라 병원 운영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B 요양병원장은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은 모두 면역력이 떨어지는 장기입원 환자들"이라며 "전염성이 없다고 해도 일반 환자들은 감염을 우려해 격리시설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력 구성 등 모든 면에서 급성기병원과는 다를뿐더러 격리시설을 마련할 여력조차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복지부의 환자 분류기준 신설은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포석"이라며 "에이즈 감염자 진료에 따른 수가를 인정해준다고 해도 감염자를 받아 줄 병원이 없으니 이를 강제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는 즉각적인 대응은 자제하면서 앞으로의 대응방침을 신중히 고려 중이다.
요양병원협회 관계자는 "에이즈 감염자들이 입원해야 하는 것은 맞다. 이에 따라 환자 분류기준이 신설되는 것은 맞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와 관련된 협회와의 논의는 전혀 된 것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하지만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은 다르다"며 "상식적으로 에이즈 감염자가 있는 요양병원에 다른 환자들이 입원을 하겠냐. 내부적으로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