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글 쓰는 사이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걸었을 산책로를 따라 타호협곡으로부터 열리는 분지를 내려다보면 별생각이 없는 필자의 마음도 따라서 열리는 것 같았다. 호텔 뒤로 짧게 끝나는 산책길은 투우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시가지를 지나 협곡 위에 서 있는 파라도르호텔 앞, 스페인광장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누에보다리를 건너 왼쪽에 있는 협곡에 걸려 있는 다리를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간다. 협곡 건너편에 늘어선 집들은 모두 하얗다. 론다를 사랑했다는 시인 릴케가 조각가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는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라는 시(詩)같은 표현이 산마루에 올라 앉아 있는 론다의 지형을 떠올리면 그렇게 적절할 수 없다.
누에보 다리는 옛날 아랍인들이 살던 구 시가지(라 시우다드)와 투우장이 있는 신시가지(엘 메르카디요)를 가르고 있는 150미터 깊이의 타호협곡에 걸려 있다. 웬만한 여행상품에서 협곡 아래까지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조형진 가이드가 동행하고 있는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길에 묻어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다.
누에보다리를 건너 오른쪽 첫 번째 골목으로 접어들어 서쪽으로 가다보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길로 이어지는 입구가 숨어 있다.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절벽을 자세히 보니 작은 자갈들이 섞여 있는 사력암이다. 아무래도 자갈 사이로 끼어든 흙은 무른 편이라서 빗물에 쉽게 깎여나갔을 것이다. 태초에는 분지를 에워싼 산마루를 흐르던 조그만 개울이 깊이를 더하면서 오늘날 분지 가까이 파내려간 것이리라.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좁지만 굽어보면 아찔한 느낌이 드는 타호협곡은 마치 한 조각 잘라낸 케익 같은 모양이라는 조형진 가이드의 표현이 참 알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호협곡을 과달레빈강이 흐른다고 한다지만 강이라고 하기에 너무 거창하고 그저 개울이라고 하면 딱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다리 밑에는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누에보 다리는 그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 속의 작은 절벽위로부터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신시가지의 거리에서 누에보다리를 바라보면 저게 구경거리가 될까 싶지만, 막상 구시가지 쪽에 있는 전망대에 서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깊게 파인 계곡과 네모난 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려 다리를 만들어낸 장인의 땀을 생각하면 역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누에보다리의 건설공사는 1751년 시작돼 1793년까지 무려 4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치형으로 건설하던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협곡 아래에서부터 돌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길이 120미터 높이 98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이 신시가지에 있는 투우장에 가는 것이 불편해서 다리를 놓았다고 하는데, 투우장은 1785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생각해볼 일이다.
협곡 바닥에서 다리 밑 폭포를 지나 반대편 막다른 곳까지 가보았다. 마침 서쪽으로 해가 기우는 바람에 다리 아래로 그림자가 든 탓도 있겠지만, 공연히 서늘한 느낌이 들어 바로 돌아 나왔다. 한국에 와서 읽은 박정은 작가의 <스페인 소도시 여행>에서 이곳에도 스페인 내전의 아픔이 서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프랑코 장군이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된 내전은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 기간 동안 양측이 번갈아가며 론다를 점령했는데, 생포한 적을 실컷 때린 다음 협곡으로 내던져 처형했다고 한다. 이때 숨진 이들은 원혼이 타호협곡에 서려있어 서늘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은 어디에나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를 남겨 놓는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군산에는 시가지 서쪽 끝 외진 곳에 해망동으로 나가는 굴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음산한 느낌이 들어 빨리 걸어서 벗어나곤 했다.
아마도 6.25전쟁 때 퇴각하던 인민군이 그 굴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죽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것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공연히 오싹한 기분이 들도록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론다의 타호협곡에서 느꼈던 서늘한 느낌도 그런 것이었을까? 그곳에 내려갔을 때는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알기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시가지를 걷다보면 관광객을 태운 옛날식 무개마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가 위협적으로 내달리는 대도시에서 마차를 타는 것과는 달리 론다에서 만나는 마차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자유여행을 한다면 꼭 타보고 싶기도 하다. 론다 투우장에서 길을 건너 동쪽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소코로광장(Plaza del Socorro)에 이른다.
광장 한 가운데 작은 분수가 있고, 좌우에 사자를 거느리고 있는 남자의 동상이 서있다. 왼쪽 앞발을 들어 반갑다고 인사하는 사자의 앙증맞은 모습이 재미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론다의 명동이라고 부른다는 소코로광장 주변에는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론다를 구경하느라 지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누에보 다리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지친 다리를 쉰다.
이곳에서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음료를 마시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현진 가이드의 세심한 귀띔을 참고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화장실 문제로 곤란을 겪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전체 일정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휴게소 혹은 화장실이 있는 가게를 이용하도록 일정이 조정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도 있는 세심한 부분까지고 챙기고 있었던 조형진 가이드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점이기도 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론다를 떠났다. 단체여행이 아니라면 <스페인 소도시 여행>의 박정은 작가처럼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론다평원 끝에 서 있는 산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도 지켜보고, 은은한 조명을 받아 밤하늘로 떠오르는 누에보다리를 구경하는 호사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의 창 너머로 보이는 들판은 가을이 늦은 탓에 텅 비어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 들판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이 떠오른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일본의 젊은이 시호의 페이스북에서 소개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세계의 절경>에서 무려 69,315개의 ‘좋아요’를 받아 10위에 올랐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의 해바라기밭이다.
시호는 그 장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꽃들이 만개해 절정을 이루는 초여름, 수평선까지 이어진 광활한 언덕에 핀 해바라기들은 마치 노란빛을 띤 바다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이 인상적이다."
해바라기밭은 스페인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세비야에서 코로도바를 거쳐 말라가에 이르는 안달루시아지방의 해바라기밭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이 지방의 해바라기는 5월 하순부터 꽃을 피기 시작해서 6월 초부터 7월 초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 우리가 묵게 된 숙소는 안떼께라지역 산중에 있는 라 시에라 호텔이었다. 60년 됐다는 4성급호텔이지만 스페인 가이드들은 이곳을 귀곡산장이라고 부른다는데, 주변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날 호텔에는 우리 일행만 투숙한 듯하다. 호텔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식사도 그렇고 모든 것이 여유가 있어 좋다.
그런데 방음에 신경을 안 쓰던 시절에 지었나보다. 옆방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조금만 집중하면 이해가 될 지경이다. 아무래도 아내와 주고받는 이야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아침시간에 하는 샤워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말려야하는 아내도 다른 방에서 물소리가 난 다음에 샤워를 했다.
외국 사람이 옆방을 사용한다면 모른 척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이 시작되면 같이 움직여야 하는 우리 일행이 옆방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방에서 오간 말이나 한 행동을 아는 사람과 같이 움직이는 일이 때로는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된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면 끝나는 일이라고 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