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립대병원에 어린이병원을 설립하면서 공공의료 확대했다고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 국립대병원에 (적자 늘리는)폭탄을 던져놓은 것에 불과하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김석화 병원장(소아청소년과)은 얼마 전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 사무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침을 놨다.
정부가 공공의료를 확대한다며 서울대병원 이외 부산대 양산병원, 경북대병원, 전북대병원, 강원대병원 등 4개 국립대병원에 어린이병원 건립을 추진해놓고 이후 운영에 대한 지원은 일체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복지부 사무관은 이에 공감하며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지만 김석화 병원장은 알고 있었다. 말 뿐이라는 것을…
서울대 어린이병원이 올해로 개원 30주년을 맞이했다.
미국 등 의료 선진국에 못미쳤던 의술은 동등하거나 월등한 수준까지 상향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적자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서울대 어린이병원 적자는 190억원으로 서울대병원 전체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어린이병원의 적자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환자 수, 수술 건수가 늘어나면서 적자 폭만 더 커졌다.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소아환자에 대한 낮은 수가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적자는 50억원 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진료양이 늘어남에 따라 2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늘어났다.
문제는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인 적자 구조는 의료진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배은정 기조실장(소아심장)은 소아심장수술 사례를 들어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심장 기형으로 출생 후 하루가 되기도 전에 수술을 해야하는 신생아는 수술실 이동부터 교수가 직접 투입된다.
수술실에서도 환자 상태에 따라 교수 2명에 전공의, 전임의, 간호사까지 모두 참여하고 수술 시간도 동일한 수술을 실시하는 성인과 비교하면 몇배 더 걸린다.
이처럼 어렵게 생명을 살려내고도 병원의 눈치를 봐야하는 게 어린이병원 의료진들의 숙명이다.
배 기조실장은 "미세한 온도차이에도 환자 상태가 크게 달라질 정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교수진이 챙겨야 한다"며 "많은 의료진을 투입하는 등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져선 운영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할 순 없다.
심장기형으로 폐동맥이 막혀있는 신생아는 그대로 두면 100% 사망에 이른다. 수술만 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신생아를 병원 운영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배 기조실장은 "30년 전 선배 의사들이 적자구조 속에서도 꿋꿋하게 환자진료에만 집중했지만 점차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어 씁쓸하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어린이병원에 대한 후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일본 등 국가에선 어린이병원은 100% 정부지원과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지원책을 고민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