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가 정부의 규제 기요틴과 한의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주장 등 안팎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언어의 선점' 작업에 착수한다.
정부의 정책 추진시 '민영화'나 '경쟁력 확보 방안' 등의 이름을 걸고 나오거나, 한의계가 의사들을 일컬어 '양의사'로 표현하는 것처럼 의협 역시 언어 속에 가치판단을 심어 주는 행위로 여론을 등에 업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의협은 상임이사회와 임원·국장 회의를 통해 보건의료 규제 기요틴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요틴'의 단어를 정책적으로 배제하고 '국민 건강 단두대'와 같은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네이밍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 기요틴'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국민들의 여론에 '언어의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언어의 선점 효과란 정치권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용어를 쉽고 세련된 말로 포장해 정치력의 확장을 꾀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대부업체들이 외상카드나 빚카드 대신 '신용카드'라는 언어를 선점해 쓰면서 외상이나 빚이 가진 부정적 뉘앙스를 긍정적 의미로 포장하는 식이다.
정부가 발표한 이번 규제 기요틴의 핵심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를 기요틴(단두대)으로 단칼에 자르겠다는 언어 선점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책 추진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때문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한의계는 공식 보도자료와 논평 등에서 수년 간 '양의사' '양의계'란 단어를 철저하게 사용하며 의사와 동등한, 혹은 카운터파트로서의 한의사의 입지를 명확히 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의협이 이런 전략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국민의 설득전에 나선 셈.
이에 신현영 의협 대변인은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 추진 네이밍이나 한의계의 철저한 용어 선정과 사용에 비해 의료계의 언어 선점 작업은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며 "국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도록 기요틴에 대응하는 새로운 네이밍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정부는 규제 기요틴이란 용어로 환자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망을 마치 철폐해야 할 규제인 듯이 언어를 선점했다"며 "국민들을 현혹할 수 있는 단어를 쓴 이상 의협도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요틴 대신 '국민건강 외면 정책'이나 '국민안전 외면 정책' 등을 고려했다가 더욱 단순화 시켜 '국민건강 단두대'로 정리하려고 한다"며 "한의협이 수년 간 양의사, 양의계란 표현을 공식 보도자료나 논평에 철저하게 사용한 것처럼 의협도 언어의 선점을 중장기적인 전략으로 끌고 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