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중앙 북부의 산기슭을 따라 흐르는 페스 강 연안에 위치한 페스는 모로코의 대표적인 고도이다. 789년 이드리스 이븐 압둘라가 건설하였다. 터를 잡기 위하여 땅을 팠더니 황금의 곡괭이가 나왔다고 해서 곡괭이를 의미하는 패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아들 이드리스 2세 시대인 810년에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 마그레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그래서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그리고 패스를 보았다.' 라고 말한다고 한다. 특히 859년 문을 연 알카라위인 대학교는 현존하는 대학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깨어있는 나라>에서 자크 아탈리는 패스에 대하여 이렇게 적었다. "당시(1163년) 패스는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물살이 센 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두 개의 성곽도시로 이뤄져 있었다. 시내에는 약 구천오백개의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십이만 가구가 살았고, 삼천오백 곳이 넘는 공방이 있었으며 그 중 약 팔백 개 공방에서 옷감을 짰다.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고급 옷감, 물방울무늬 옷감, 비단과 금란 같은 옷감들이 여기서 나왔다.
닷새의 여행 끝에 이븐 루시드는 패스의 웅장한 관문인 부 즐루드 문을 통과해 패스 엘 발리(원래의 구시가지)에 들어왔다. 문의 바깥쪽은 패스의 색깔인 푸른색이고, 안쪽은 이슬람의 색깔인 녹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깨어있는 나라>에서는 알칼라위인대학의 총장이 교수로 부임한 코르도바 출신 이븐 루시드에게 이 대학의 학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하면서, 학비가 면제되는 페스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방방곡곡,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서도 학생들이 유학을 온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교수를 초빙해야 한다.'라면서 루시드의 자격을 의심한다.
외국의 유학생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페스가 열린 사회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크 아탈리 역시 코로도바를 탈출한 모세의 가족들이 페스로 옮겨 자리를 잡으면서 ‘페스는 바빌론에서 도망친 유대인들이 세운 도시’라고 적은 것을 보면, 간혹은 박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을 비롯한 이민족이 정착해서 살기도 했던 모양이다.
패스에 있는 왕의 별궁 앞에서 버스를 내린 일행은 세계3대 미로로 유명한 골목시장 메디나로 들어갔다. 무려 40만 명이 살고 있는, 작지만 거대한 도시, 골목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가이드는 일행이 반드시 지켜야할 수칙을 설명했다. 앞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 일행을 놓치면 혼자만의 불행이 아니라 뒤따라오는 일행까지 미로 속에 남는 대형사고가 된다.
혹시 일행을 놓쳤을 때는 함부로 길을 찾으러 나서지 않고 그곳을 지켜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가이드를 도와주는 길이라는 것이다. 미로 속에는 사람들은 물론 짐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를 비롯한 탈 것들이 마구 뒤섞이기 때문에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좌로, 우로' 현지 가이드 모하메드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거의 앞만 보고 걷다가 미로탐험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 먹거리는 물론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첫 번 째 방문한 곳은 황동판을 두들겨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는 황동공방이다. 밑그림도 없이 오직 장인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설계도에 따라 새긴 황동공예작품은 소품이라고 해도 300유로가 넘는단다. 입국신고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두 번 째 방문한 곳은 직물공방이다.
전통방식으로 숄이나 두건을 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베틀과 비슷하게 생긴 기계로 하는 작업방식 역시 거의 비슷하다. 공방에서는 일행 가운데 남녀모델을 뽑아 터번을 감아주고 사진까지 찍게 했는데도 구매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은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가죽제품을 전시판매하는 것이었다.
비둘기똥과 소똥으로 가죽을 염색한다는 테너리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곳이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허브 한 줄기를 나누어준다. 한여름이었다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 민트향이 나는 허브다. 기온이 떨어진 탓인지 이날은 한여름의 지독한 냄새와 비교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염색하는 곳에서 퍼지는 참기 어려운 냄새는 멀리 떨어진 테라스에서 조차 참기 어려워 보다가 튀어나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견디기 힘든 환경을 묵묵히 인내하는 작업부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염색하는 곳 옆을 흐르는 작은 개울은 이미 시커멓게 변한 물이 흐르고 인부는 그 물속에서 염색된 가죽을 세척한다. 그 아래서는 개울물을 길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서울에 있는 중랑천이 한때 상류인 의정부 일대의 가죽공장에서 흘려보내는 폐수가 흘러내리면서 악취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 같다.
이곳에서는 일행 가운데는 가죽슬리퍼를 산 사람이 있어서 불편한 마음이 덜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사리 생산한 명품 가죽을 전시판매하는 공방을 나서서 버스로 이동하기까지 집요하게 따라붙는 현지인들이 들고 있는 가죽제품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르지만 순간 골목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차를 내렸던 곳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탕헤르로 향한다. 패스에서 탕헤르까지는 국도를 이용해서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돌아 돌아가는 길이 심심치는 않지만 이미 수확이 끝나서 텅 빈 들판만이 남아 삭막한 분위기다.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순간 버스가 비틀거린다. 난폭운전을 하는 차와 부딪힐 뻔 했다. 큰 사고로 연결되지 않아 다행이다.
조형진 가이드의 지론에 따르면, 조금은 유치해져야 여행이 재미있어진다고 한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행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것이 여행을 120%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일행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일행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단체로 하는 여행에는 개인으로 혹은 쌍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친목회와 같이 다소 숫자가 많은 팀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들의 움직임이 다른 일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잘 맞는 비유를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네 명을 넘어서면 그건 집단이 된다. 사람들이 집단은 이루면, 이 집단은 얼마 안 있어 패거리가 된다. 심지어는 식사를 할 때조차 사람들은 음식을 맛보게 하려하고, 서로 맛을 보고는 놀라워한다. 꼭 무슨 경매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아수라장이 된다. 소박하거나 엄격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사회가 산으로 옮겨진 것이다. 사람들은 비교하기 시작한다." 단체여행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골길을 따라 5시간 가까운 곡예운전 끝에 탕헤르에 도착했다. 역시 변두리에 있는 단층짜리 호텔 아렌(Ahlen)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일정표에 나와 있는 호텔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솔자도 가이드도 모르는 일이라 한다. 아마도 현지 안내뿐이 아니라 현지에서의 숙소나 교통편 등에 관한 것을 모두 현지가이드에게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도착하자마자 안내된 식당은 분위기부터 전날과 달랐다. 물론 엄청난 차이는 아니었지만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는 의미이다. 저녁 메뉴는 모로코 전통음식 따진이라는데 감자, 당근, 호박 등 야채를 두르고 가운데에는 삶아서 양념을 한 돼지고기를 두었는데 먹을 만했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결국은 빵과 밥을 먹고 말았다. 몇 일 전 중국음식을 급하게 먹고 고생한 뒤로는 먹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식사 후에 배정받은 방은 수영장이 내다보이는 1층 방이다. 이번 여행길에 가장 호사스러운 숙소인 듯하다. 가이드가 모기가 있는지 확인을 다니는 것을 보면 이곳 모기 역시 대단한 모양이다. 하기는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말라리아와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하지만 모로코는 문제가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