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하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소리를 내서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환자의 눈빛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서울 양천구 K내과 원장은 위내시경을 받으러 온 50대 남성 환자에게 폐렴구균 백신을 권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독감이 유행이라길래 평소 당뇨병이 있는 만성질환자라서 권한 것뿐인데….
이후 이 원장은 환자들에게 굳이 백신을 맞아보라고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의를 갖고 하는 얘기라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의사가 치료나 예방을 권하는 이유가 돈과 직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환자가 필요하면 백신을 찾을 것이다. 설득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예방백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개원가는 환자건강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각종 백신 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백신 자체가 치료보다는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상담과 권유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실제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성인 예방백신접종률이 낮은 주된 이유로 전문의료인의 적극적 예방접종 권고 부족을 꼽았다.
이처럼 의료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사를 바라보는 환자들의 삐딱한 시선이 신경 쓰여 백신을 먼저 권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단순히 백신 포스터를 진료 대기실 곳곳에 붙여놓는 수준의 의원들이 허다하다.
인천의 H내과의원 원장은 "이놈의 병원은 비싼 것만 빨리해준다는 비판을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마음에 하려다가도 의욕이 접히는 것이 사실"이라며 "65세 이상 환자면 보건소에서 무료로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니까 가보라고만 한다"고 털어놨다.
"의사-간호사, PCT 만들어 팀플레이 해야"
그렇다면 환자에게 백신 접종 권유 자체를 꺼리는 의사가 백신 접종률을 높여 환자 건강도 미리 챙기고 수익까지 창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사와 간호보조인력이 팀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Y내과의원 원장은 "의사의 접종 권고도 중요하지만 간호인력의 접종 권유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의사의 권고보다 간호인력의 권유가 더욱 효과적일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원장이 성인백신 접종을 권유할 경우 일부 환자들은 돈 때문이 아니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며 "그러나 환자들이 생각하기에 경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의사에 비해 스킨십이 좋은 간호사가 권유할 때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고 또 실제로 접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2년 미국공공보건저널(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발표된 논문을 살펴보면 의사와 간호사 로 '환자 관리 팀(Patient Care Team, PCT)'을 구성해 환자 진료기록을 보며 팀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성인 백신 권고율과 접종률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의사와 간호사가 팀을 구성해 1차로 간호사가 환자에게 상담 및 권유를 하고, 의사가 간호사 상담 내용을 기본으로 예방접종의 필요성에 대해 상담을 강화했다.
그 결과, 폐렴구균 백신 접종률이 52.2%에서 74.5%로, 대상포진 접종률이 12.3%에서 19.3% 증가했다. 성인 백신 권유비율도 폐렴구균은 19.9%에서 43%로 급증했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조현호 의무이사(중계윌내과의원)는 "간호사와 의사의 협력은 개원가에서의 성인 백신 접종률 향상은 물론 국민건강에도 큰 기여를 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 백내과 정은숙 간호사도 "의사들은 환자 진료와 처방하기도 시간상 여유가 없어 성인예방접종을 직접 권유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